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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서해안 고래잡이 전진기지였던 어청도

강제윤 시인 - 군산 어청도, 연도기행(2)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3.01.10 09:18
  • 수정 2015.11.1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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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청도에 들다 한때 2000여명에 달하던 어청도에 주민들이 이제는 190여명만 남았다. 군부대가 있어 군인과 군속들이 다수 살지만 이들은 뜨내기다. 어청도는 군산시에 속해 있으나 군산의 섬들보다는 충남 보령의 외연도, 호도, 녹도 등과 가깝다. 하지만 섬은 이들 이웃 섬들과는 교류가 거의 없다. 행정구역이 충남에서 전북으로 바뀌면서 뱃길이 끊긴 탓이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사람살이의 정을 강제로 끊어버린 것은 권력의 야만이다. 과거 독재 정권의 실력자였던 김종필이 선거구 조정을 명분으로 전북 금산을 충남으로 가져간 대가로 어청도를 전북에 넘겼다.

어청도는 중국과도 멀지않다. 산둥반도와의 거리가 300㎞. 서울에서 광주, 부산에서 제주 정도의 거리다. 그래서 어청도를 비롯해 대청도나 외연도, 가거도 등 중국과 지근거리의 서남해안 섬들에서는 '중국의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들이 떠돌기도 한다. 물론 과장이다. 제주의 닭 우는 소리가 부산서 들리겠는가. 그러한 말은 물리적인 거리만큼이나 심리적 거리도 가깝다는 표현에 다름 아니다.

어쩌면 과거에는 중국과 황해 바다 섬들 간에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원활한 해상 교류가 이루어졌는지도 모른다. 바람을 동력 삼은 돛단배(風船)로도 바다 길 300킬로는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었다. 지금은 우리가 너무 좁은 땅에만 갇혀 살다보니 두 세 시간의 뱃길도 아득히 멀게 느껴질 뿐이다. 폴로네시아 군도의 망가레바 섬에서 마르카즈 제도는 무려 1600킬로나 떨어져 있지만 옛날 망가레바 섬 사람들은 작은 카누를 타고 그 길을 수시로 왕래하며 교류하기도 했었다.

고래잡이배들로 성시를 이루던 섬
어청도에는 19세기말부터 이미 일본인들이 살았다. 이른바 어업 이민, 일본제국주의는 어청도, 거문도 등의 외딴 섬부터 조선을 먹어 들어왔다. 1907년, 어청도에만 40여 호 200여명의 일본인들이 정착해 살았다. 일제 때 어청도는 오사까에서 요동반도의 다롄까지 왕래하는 정기여객선과 오사까, 신의주간 우편선의 기항지이기도 했다. 1912년에 생긴 어청도 등대는 황해 바다 뱃길을 밝히는 불빛인 동시에 일제의 대륙 침략의 앞길을 비추는 전조등이었다. 1934년, 일제는 어청도항의 대규모 확장 공사를 했고 1937년 중일전쟁의 중간 병참 기지로 사용했다.

 

 


일제 때부터 어청도는 고래잡이의 메카였다. 동해의 고래가 봄이면 새끼를 낳기 위해 어청도 근해로 몰려 왔다. 어청도는 동해의 장생포와 함께 오랫동안 포경선의 전진 기지였다. 국제 고래위원회(IWC)의 결의로 상업 포경이 끝난 것은 1986년. 어청도 포구의 양지 식당 여주인은 "85년까지도 가마솥에 불을 때 고래 고기를 삶아 먹었다."고 기억 한다. 그때는 어선들의 인심도 좋았다. "물 한잔만 줘도 고기를 몇 상자씩 내려 주고 갔다."

포구는 고래잡이배들 외에도 트롤선(저인망 어선), 머구리배, 불법 저인망 어선인 '방배' 등으로 성황을 이루었다. 한집 건너 한집이 다방과 식당. 다방은 간판만 다방이었지 술도 팔고 몸도 파는 유곽이었다. 아가씨들이 많을 때는 100여명에 이른 적도 있었다. 작고 먼 외딴 섬이 밤마다 불야성을 이루었다. 큰 바람이라도 불면 그 많은 배들이 포구로 싹 들어왔다. 그때마다 포구는 먹고 마시고 노는 선원들로 흥청거렸다. 중국과 일본 배들까지 포구에 정박했다. 해군이 그들의 상륙을 감시했다. 고래잡이가 막을 내린 뒤에도 포구는 한참 더 호황을 누렸다. 5년 쯤 전부터 포구는 급격히 쇠락했다. 저인망 어선들에 대한 단속이 심해지고 새만금 공사로 어획량이 급감하면서 100여년을 이어온 어청도의 호시절이 끝났다.

지금은 식당과 슈퍼 몇 개를 제외하고는 선창가의 상가들은 대부분 폐업 했다. 한때 10여개나 되던 다방도 모두 사라졌다. 이제는 간판만 남은 양품점 '핑크 하우스'에서는 다방 아가씨들만을 상대로 숙녀복과 란제리와 악세사리를 팔았다. 오늘 핑크하우스에는 화려한 옷들 대신 고기잡이 그물만 가득하다.

'뺑뺑이', 개량 안강망 어선
새벽에 조업 나갔던 뺑뺑이 한척이 포구에 정박했다. 개량 안강망 어선. 기존의 안강망 은 밀물과 썰물 방향으로 각기 하나씩의 그물을 고정해서 설치해 두고 물이 들고 날 때마다 서로 다른 그물을 봐야 했다. 개량 안강망은 썰물과 밀물의 흐름에 따라 회전하면서 물고기를 포획한다. 하나의 그물로 들고나는 물때의 어류들을 모두 포획 할 수 있게 됐다. 뺑뺑 도는 그물이라 해서 어부들은 개량 안강망을 뺑뺑이라 부른다.

요즈음은 새우 잡이 철이다. 선원들은 갑판 가득 쌓인 새우를 선별한 뒤 바닷물에 깨끗이 세척한다. 새우떼를 쫓아온 포식자들, 아귀와 광어, 우럭 등의 생선도 함께 잡혀왔다. 선원 한 사람은 아귀들 뱃속에 가득 찬 새우들을 게워내 깨끗이 씻는다.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아귀의 입속에서는 새우만이 아니라 꼴뚜기, 멸치, 정어리 등이 마구 쏟아진다. 아귀처럼 삼켰으나 대부분은 소화 시키지 못했다. 아귀의 위액에 절은 물고기들. 어떤 아귀는 제 동족까지 삼켰다. 위산에 녹아버린 아귀 새끼의 몰골이 처참하다. 제 새끼는 아니었을 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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