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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바다는 이 행성의 피다

강제윤 시인 - 제주 추자도 기행(1)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3.02.07 08:35
  • 수정 2015.11.1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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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이 행성의 피다. 우리가 어디에 살고 있든지 간에 바다는 우리 모두의 기에 영향을 끼친다. 바닷물은 이 해안에서 저 해안으로 물리적 정보뿐만 아니라 천상의 정보까지 운반하기 때문이다."

(찰리 라이리 '물의 치유력')
어떤 문화권의 사람들은 바다가 사람의 생사에 직접 관여 한다고 믿는다. 조수(潮水)가 사람의 혼을 옮기고 썰물이 사람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한 통계는 이를 뒷받침 한다. "만조 때 태어나는 아이가 많고 간조 때 숨을 거두는 사람이 많다." 달의 인력이 바닷물을 끌어당기면 사람 몸속의 액체는 바다의 인력에 끌려간다. 달이 뜬 바다를 보면 사람의 심장도 뛰는 것은 그 때문이다.

비구름이 제주의 하늘을 덮고 있다. 오늘 제주 바다는 깊고 푸르고 어둡다. 바다의 표면적은 지구 표면의 4분의 3에 달한다. 나그네는 여객선을 타고 큰 바다에 나와서야 비로소 바다의 크기를 가늠한다. 사람은 물의 행성에 떠 있는 한 점 티끌이다.

제주항에서 추자도를 경유해 뭍으로 가는 여객선은 두 척이다. 오늘 한 척의 배는 결항이다. 추자도, 목포 항로의 쾌속선은 정기 점검중이다. 대부분의 여객선은 여름철 성수기를 앞두고 전면 수리에 들어간다. 완도 항로의 느린 카페리호를 타고 추자도로 향한다. 추자군도(楸子群島)는 제주 본 섬의 북쪽에 있다. 상추자도, 하추자도, 추포도, 횡간도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가 추자 군도를 이룬다.

추자군도의 횡간도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최북단 유인도다. 보길도와 소안도가 지척이다. 그 너머는 해남 땅끝 마을이다. 하지만 땅끝은 땅 끝이 아니다. 대지를 가로 질러와 해남 땅끝 마을에서 끝나는 것처럼 보였던 산줄기는 바다 속으로 이어진다. 산줄기는 흑일도, 백일도, 넙도, 노화도, 보길도, 소안도를 지나 횡간도, 추자도까지 뻗어 있다. 섬도 땅이다. 한반도와 한 몸으로 연결된 진정한 땅 끝은 추자군도의 섬들이다.

완도 항로의 카페리 '강남풍호'는 목포행 쾌속선보다 배나 느리다. 자동차까지 운반하는 여객선의 짐칸은 만 차다. 자동차는 사람과 화물을 빠르게 이동시켜주는 운송 수단이지만 땅을 벗어나는 순간 콘테이너 박스나 생선 상자 같은 화물에 지나지 않는다. 쾌속선의 수리 기간 동안 카페리호는 단축됐던 바다 길을 다시 과거로 돌려놓았다. 그러나 느리게 가는 뱃길이 불운은 아니다. 배의 밑 칸을 차지한 자동차와 택배 화물들의 무게로 강남풍호는 웬만한 파도에도 끄떡없다. 흔들림이 적어 멀미가 없는 뱃길은 편안하다.  

 두 시간의 항해 끝에 여객선은 하추자도 신양항에 입항한다. 쾌속선의 결항으로 강남풍호의 승객이 평소보다 많다. 부두 바닥에 직접 접안 할 수 없는 강남풍호는 접안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승객들이 다 내린 후에도 배는 한동안 정박한다. 지게차가 자동차와 택배 화물 콘테이너를 여객선에 옮겨 싣느라 분주하다.

신양에는 마을 회관과 경로당, 보건진료소, 하추자 우체국이 있다. 마을 곳곳에는 공동우물이 여러 곳 남아 있다. 다리로 연결된 상하추자 두 개의 섬은 저수지와 해수담수화 시설을 통해 물을 공급 받는다. 하지만 오랜 세월 섬의 생명수였던 우물도 폐쇄되지 않고 남아 있다. 물 부족의 고통을 겪어 본 추자섬 사람들이 상수도가 생긴 뒤에도 우물을 버리지 않은 것이다. 바다가 이 행성의 피라면 우물은 이 마을의 피다. 우물에서 뻗어 나간 혈관들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저 우물의 심장에서 배분된 피가 수도 파이프를 타고 마을의 집들로 배달된다. 비 피할 양동이 하나씩을 뒤집어 쓴 펌프는 심장의 피를 옮겨주는 엔진이다.

남으로부터 안개가 밀려온다. 안개의 냄새만으로도 우기가 다가 왔음을 눈치 챌 수 있다. 초여름 안개는 우기의 선발대다. 기습전의 명수, 안개는 소리 없이 섬을 점령해 들어온다. 안개의 남쪽은 제주도, 안개의 북쪽은 보길도다. 나그네가 보길도에 살던 때 해변에서 자주 바라보던 추자도는 가깝고도 먼 섬이었다. 빤히 보이는 두 섬 사이에는 연락선이 없다. 건널 수 없는 섬들 사이의 거리란 대체 어떻게 가늠할 수 있는 것일까. 오늘 추자도에서 보길도는 흔적도 없다. 안개가 모든 섬들을 지워버렸다. 건널 수 없었던 추자도처럼 나그네가 살았던 보길도 또한 환영(幻影)인 것일까.

하추자 산길을 넘는다. 신양리에서 묵리로 가는 길. 추자 섬의 산은 높지 않고 길은 멀지 않다. 묵리 하산 길의 저수지가 추자도 제 3 수원지다. 저수지는 단 한 방울의 물도 흘려버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이다. 저수지의 모든 바닥을 비닐 천으로 방수했다. 물 부족으로 고심했던 섬의 흔적이 눈물겹다. 수원지 밑에는 해수담수화 시설이 들어 서 있다. 빗물을 받아쓰는 저수지의 물이 부족하면 해수를 담수 처리한 뒤 함께 섞어서 공급한다. 추자도에는 모두 4개의 수원지가 있는데 저수량은 총 1720톤, 해수담수화 센터는 1일 1천 톤의 담수화 능력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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