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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석모도, 관음보살을 친견하다

강제윤 시인 - 인천 석모도 기행(상)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3.05.15 10:31
  • 수정 2015.11.1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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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인생이 아무리 비극적으로 보여도 거기에는 궁극적인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신념을 키워나가는 행위다.”(카렌 암스트롱)

밤 10시, 신촌 버스터미널에서 강화행 막차를 탔다. 자정 무렵 강화 버스 터미널 부근 여관에 들었다. 파리 한 마리가 귀찮게 잠을 방해 한다. 잡아 버릴까 망설이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아침 일찍 배를 탈 참이었다. 몸은 고단 했고, 알람시계는 없었다. 잠들기 전, 일찍 일어날 수 있을까 잠깐 걱정 했었다.

웅웅 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파리는 사이렌을 불며 나그네의 얼굴 부근에서 아침 비행을 시작한다. 이놈의 파리새끼, 손을 한번 휘젓다가 번쩍 정신이 든다. 고맙지 않은가. 아침의 전령, 파리는 게으른 나그네의 아침잠을 깨우기 위해 경적을 울려 준 것이다.

누군가 외포리 갈매기들을 ‘거지’ 갈매기라 했다. 외포리 갈매기들의 구걸행각은 공원의 비둘기들보다 더 노골적이다. 외포리와 석모도 바닷길을 영역으로 하는 갈매기들의 주식은 바다 새우가 아니라 새우깡이다. 갈매기들은 새우깡을 뿌려대는 관광객들의 코앞까지 접근한다. 어떤 녀석은 겁도 없이 손끝의 새우깡을 채가기도 한다.

갈매기들은 더 이상 바다의 새우나 물고기들을 잡아야할 이유가 없다. 길들여진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마음만이 아니라 몸까지 바꾸어버린다. 새우깡을 구성하는 주요 성분은 새우가 아니라 밀가루와 전분 이다. 새우깡에는 새우가 5.3% 밖에 들어 있지 않다. 바다 새의 주식이 과자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새우깡만으로도 영양은 넘친다. 갈매기들은 하나같이 비만이다.

외포리와 석모도 사이의 뱃길은 5분 남짓. 여객선은 강화 본 섬의 외포리와 석모도 석포항 사이를 왕래한다. 그 짧은 길을 갈매기들도 하루에 수 십 번 씩 오간다. 여객선은 갈매기들의 서식지, 갈매기들은 끈도 없이 여객선에 붙들려 산다. 사료를 주고 손바닥을 탁탁 털며 배에서 내리는 사육사들. 먹이에 길들여지는 것이 어디 갈매기들뿐이랴. 사람도 쉽게 놓여나지 못한다. 사람 양식장의 주인은 누구일까. 가족일까, 돈일까, 신일까 그도 아니면 외계 여행자일까.


석포항에서 보문사까지 걷는다. 석포항 부근 콘도 앞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왼쪽은 매음리, 어류정항, 보문사 길이고 오른쪽 길은 상리, 하리, 석모리, 삼산 면사무소 가는 길이다. 석포 교회, 언약 교회, 감사 교회, 석모 교회, 삼산 장로교회, 송가 교회, 항포 교회, 석포리 성공회, 천주교회 석모 공소, 보문사, 단군 성전 기도도량, 도로 안내판의 절반이 종교 시설이다. 그중에서도 교회는 단연 우세를 점한다. 보문사가 기도도량으로는 전국구지만 석모도 주민들의 신자수로는 교회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한때 한국의 교회는 다방 숫자와 같다는 우스갯 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석모도에는 교회가 다방보다 많다.

7월 중순의 논에는 벼들의 키가 아이들 허리까지 자랐다. 작은 농수로에는 녹조류가 번성하고, 수로의 폭은 좁고 물은 깊지 않지만 수로에는 어른 팔뚝만한 잉어들이 유유히 떠다닌다. 잉어들의 점심시간. 잉어 두 녀석이 나란히 고개를 곧추 세우고 물풀을 뜯는다. 잉어는 물속의 염소다.

수로에서는 자주 황소개구리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녀석들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가 이내 숨어버린다. 갈대 잎 위에서는 잠자리가 먹이를 노리고 소금쟁이는 부지런히 물위를 미끄러져 다닌다. 나그네가 살던 섬에서는 소금쟁이를 엿장수라 불렀다. 가위모양의 생김새 때문일 것이다. 물에 살면서도 물속을 헤엄치지 않고 물위를 걸어 다니는 소금쟁이. 수상스키 선수처럼 날렵하고 멋지다.

저 논들은 모두 바다 물길을 막아 막든 간척지다. ‘농로는 지반이 약하니 농기계 외에는 출입하지 말라’는 경고판이 서 있지만 자동차는 무시로 다닌다. 천일염을 생산하던 매음리 삼양염전은 골프장으로 변신중이다. 이 나라의 해변은 온통 골프장과 콘도와 펜션, 모텔, 횟집 일색이다. 길가에서 풀을 베던 노인은 ‘소금 값도 괜찮은 편인데 왜 골프장을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린다. 노인은 ‘골프장이 생기면 농약 때문에 바다가 망가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길을 가는 내내 도로 변 갓길은 온통 개망초 천지다. 개망초야말로 이 계절의 주인이다.

석포항에서 10킬로, 삼복염천의 아스팔트길을 걸었다. 보문사. 금산의 보리암, 낙산사 홍련암, 여수의 향일암과 함께 이 땅 불교의 4대 해수 관음 기도처 중의 하나다. 속칭 ‘기도빨’이 세다는 곳이다. 보문사는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에 회정 대사가 창건했다. 현재의 보문사 동굴 사원은 회정 대사가 처음 건립한 것을 조선 순조 12년(1812년)에 다시 고쳐 지은 것이다. 너럭바위 아래 천연 동굴을 이용해 법당을 만들었다. 동굴 법당에는 부처와 보살, 나한들을 모셨다. 투박한 석불들은 신라 때 어떤 어부가 꿈을 꾸고 바다에서 그물로 건져 올린 것이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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