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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과학의 시대에도 만들어지는 신화

강제윤 시인 - 인천 석모도 기행(하)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3.05.23 08:40
  • 수정 2015.11.1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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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법당에는 수많은 연등이 걸렸고 위패들도 모셔져 있다. 연등마다 명패가 걸리고 명패에는 소망이 가득하다. 1300 사업번창, 학업성취, 삼재소멸, 1382 사업번창, 건강, 1383 박사학위 취득, 건강 1389 업장소멸, 건강, 1407 소원성취, 학업성취 1469 가족건강, 결혼 성사….

기원은 가족건강과 사업 번창, 학업 성취 등의 소망이 가장 많다. 돈을 많이 벌게 해주고, 자녀들 좋은 대학 가게 해주고, 가족들 건강히 오래 살게 해달라는 소망들. 소망은 이 시대 사람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확연히 보여주는 증표다. 돈과 학벌과 건강. 연등에 결린 신도들의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스님들은 조석으로 기도를 대리한다.

기도란 무엇일까? 내 안에 신이 있고 내 안에 불성이 있다면 기도란 내 안의 부처와 신에게 기원하는 것이 아닐까. 기도하는 것도 나고 소망을 이루어 주는 것도 나다. 그러므로 기도처에서의 기도는 소망을 이루기 전에 자기 스스로를 인간 정신의 높은 곳으로 이끄는 고귀한 행위다.

정신의 고양을 통해 스스로 신과 불보살의 경지에 이른 다음에야 나는 나의 기도를 이루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도를 누군가 대신 해준다면 그것도 기도라 할 수 있을까? 문득 한 의문이 스쳐간다.

극락 보전 마루에서는 여러 보살님들이 간절하게 절을 올린다. 성취는 기약 없고 소망은 끝이 없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생이 오고 갔을 것이다. 이 보문 동천의 법당에서. 보문사의 해수관음을 친견하려면 극락보전 뒤 험한 산길을 올라야 한다.

대게 영험하다는 기도처들은 높은 곳에 위치한다. 산중턱이나 언덕의 끝자리에 있다. 그런 기도처의 창설자들은 적어도 인간 심리의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지녔던 것이 분명하다. 기도가 자기 정화 의식의 정수란 사실을 그들은 이미 눈치 챈 것이다.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땀 흘리며 높은 곳으로 오르는 동안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의 찌꺼기들은 걸러진다. 몸과 정신은 자연스럽게 정화되고 고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침내 기도처에 도달한 순간 기도객들은 이미 기도의 반은 성취하게 된다. 기도가 시작되기도 전에 영험이 먼저 나타나는 것이다.

 

해수관음에 대한 이 땅 사람들의 신심은 투철하다. 관음 신앙은 한국, 일본, 중국, 티베트 등에서 활발하다. 티베트에서는 달라이 라마를 관음보살의 현신으로 여긴다. 티베트의 포탈라궁은 관음보살이 상주한다는 보타낙가산을 조형화 한 것이다.

관음신앙은 미륵신앙, 지장신앙, 정토신앙 등과 함께 불교의 대표적 타력신앙이다. 관음보살은 범어로는 '아바로키테스바라'. 한자로 번역한 것이 관음, 광세음, 관세음, 또는 관자재, 관세자재 보살이다. 관음보살은 세상의 음성을 관찰하여 중생들을 '괴로움에서 건져주고'(悲) 중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慈) 자비(慈悲)의 화신이다.

보문사 마애석불 좌상은 1928년, 금강산 표훈사 주지 이화응과 보문사 주지 배선주가 낙가산 중턱 눈썹 바위에 조각한 것이다. 마애불 앞 안내판에는 조성 내역이 친절하게 기록 되어 있다. 하지만 기도하러 온 동네 노인의 믿음은 다르다. 노인은 어느 날 천둥 벼락이 치더니 바위를 가르고 부처님이 튀어 나오셨다고 믿는다.

과학의 시대에도 신화와 전설이 만들어지고 유통된다. 그것이 신앙의 힘이고 신앙의 신비다. 바위에 갇힌 부처님을 꺼내준 것은 그런 중생들의 신심일 터. 믿는 이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 한 마애석불은 진실로 관음보살이다. 관음보살은 감로수 병을 들고 연꽃받침 위에 좌정해 있다.

마애불 조성 안내판 옆에는 '비둘기들이 불상을 훼손하고 있으니 공양물을 밖에 드러내 놓지 말아 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관음보살께 올리는 공양물을 비둘기들이 훔쳐 먹고 관음보살 몸 이곳저곳에 함부로 똥을 싸대고 있으니 먹이를 주지 말라는 뜻이다.

마애불의 온몸은 비둘기 똥으로 얼룩져 있다. 사람들은 바위에 기대 믿음을 얻어가지만 비둘기들은 바위에 기대 먹이를 얻고 잠을 잔다. 비둘기들이 현명한 것도 사람이 어리석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그네가 보기에는 암만해도 이 석불의 진짜 주인은 비둘기들이다. 비둘기들은 말없는 관음의 응신일까. 의지할 데 없으면 쇳덩어리나 나무 조각, 너럭바위 하나에도 기대고 싶은 것이 중생의 마음이다.

석불 앞에서 사람들은 절을 하고 비둘기들은 응답한다. 구구구구…. 여름 낙가산, 아홉 분의 비둘기 보살이 불상 곳곳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몇은 법문을 하고, 몇은 졸고, 또 몇은 몸치장중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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