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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완도신문 군민 대변지로 우뚝서라!

김주언 / 전 한국기자협회장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3.09.11 15:24
  • 수정 2015.11.19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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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보도냐, 진실보도냐. 언론보도를 논의할 때 항상 화두로 떠오르는 질문이다. 그러나 ‘언론은 오로지 진실만을 보도해야 한다.’는 원칙은 당위이다. 진실은 여간해선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진실은 항상 밋밋하게 세월이 흐른 뒤에 나타난다. 어쩌면 기억 속에 사라져버릴 때쯤에야 나타나는 듯 마는 듯 스쳐 지나갈 수도 있다. 영원히 미궁에 빠져 버릴 수도 있다. 따라서 ‘언론이 진실만을 보도해야 한다.’는 당위적 주장은 허구일 수밖에 없다.

언론은 ‘사실보도’를 생명으로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 언론의 보도를 보면, 사실을 빙자한 거짓과 주장이 난무한다. 정치인이나 공안당국의 말이 검증도 거치지 않은 채 활자화하거나 방송을 탄다. 신빙성 여부는 뒷전이다. 때로는 거짓말도 그대로 보도된다.

최근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통합진보당 이석기의원의 ‘내란음모 사건’ 보도도 마찬가지이다. 출처도 불분명한 ‘공안당국’의 주장이 신문과 방송, 인터넷에 차고도 넘친다. 이석기의원은 현재 국정원의 수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내란을 음모한 반국가단체의 수괴가 되어버렸다. 헌법에 보장된 ‘무죄추정의 원칙’은 폐기된 지 오래이다.

법률에 명문화해 있는 피의사실 공표죄나 공무상 비밀누설죄는 아예 적용되지도 않는다. 이의원이 앞으로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실추돼버린 이미지는 극복하기 어렵다. 그는 이미 ‘여론의 재판정’에서 반국가단체의 수괴로 낙인찍혔기 때문이다.

이처럼 언론보도는 한 인간을 파멸로 이끌 수 있다. 따라서 기자들은 보도하기 전에 사실여부를 꼼꼼히 따져 보아야 한다. 한 치의 의구심이라도 남아 있다면 확인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보도를 하지 않는 것은 기자로서의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언론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환경감시’이기 때문이다. 권력의 비리를 알고도 모른 체 한다면 언론은 권력과 한통속이 되어버린다. 어쩌면 ‘공범’일지도 모른다. 언론은 시민의 편에 서서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며 비판하는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저널리즘의 목적은 ‘시민에게 그들이 자유로워지고 자신을 스스로 통제하는 데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언론은 민주주의를 위해 참정권을 가진 시민에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정확하고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하는 데 존재 의의가 있다.

국민의 알 권리에 복무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세상의 소식을 접하는 사람들 처지에서 보면, 언론이 정보통제자로 기능할 수도 있고, 잘못된 뉴스를 사실인 양 포장할 수도 있다. 따라서 언론은 무엇보다도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

언론은 ‘사실(fact)’을 성실하게 보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저널리즘은 ‘진실(truth)'을 찾아내기 위한 고통스런 여정이다. 진실은 숨어있는 사실을 끄집어내고, 겉으로 보기에 아무 상관없는 사실들의 논리를 짜 맞춰 이해시키며, 사람들이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행동에 옮길 수 있는 나침반이다. 따라서 언론은 ’사실에 대한 진실(truth about the fact)‘을 찾아내 보도해야 한다. 끊임없이 검증을 거쳐야 하며, 취재대상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은 매우 고달픈 작업이다. 때로는 기자를 죽음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미국 새너제이 머큐리 뉴스의 게리 웹 기자는 마약출처를 취재했다. 웹 기자는 1년 동안의 취재 끝에 로스앤젤레스의 코카인 공급자와 니카라과의 반군세력, 그리고 미국 정부의 연관성을 찾아냈다.

그는 마약단속반 비밀테이프와 FBI 보고서 등 취재 당시 확보한 모든 자료를 온라인에 공개했다. 1997년 11월 당시 하루 100만 명이 이 기사를 읽었다. 파급효과는 컸다. 정부와 CIA 등 정보기관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그러자 주류언론이 웹 기자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전혀 증거가 없다”는 CIA의 입장을 전하기에 바빴다. 웹 기자는 “기득권을 가진 언론들에게서 지옥 맛을 봤다”고 말했다.

머큐리 뉴스는 웹 기자를 버렸다. 머큐리 뉴스는 “우리가 부족했다”고 밝혔고, 홈페이지를 닫았다. 웹 기자는 집에서 240㎞ 떨어진 곳에서 일하게 됐다. 1년 뒤 CIA는 반군 마약성과 관련된 내부 자료를 공개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감사관은 “CIA가 마약밀매가 의심되는 니카라과 반군 계획을 지원하던 개인과의 관계를 신속하게 중단하지 않은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언론은 이 보고서를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았고 결국 이 사건은 묻혀 버렸다. 웹 기자는 자살했다. “기자가 기자를 죽였다.”

이처럼 언론의 문제점은 비단 한국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과 비슷한 ‘자유언론’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편집국장 앵커 칼럼니스트 등 저명 언론인들과 학자 수백 명이 모여 ‘저널리즘을 염려하는 언론인 모임(CCJ)’을 만들어 저널리즘을 연구했다.

언론인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이 이끈 CCJ는 2년 동안 진행한 프로젝트 결과 보고서를 묶어 '저널리즘의 기본요소'라는 책으로 펴냈다. 이 책은 국내에서도 저널리즘 연구의 교과서로 널리 활용된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저널리즘의 첫째 의무는 ‘진실추구’이며 어느 누구보다 ‘시민에게 충성’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취재대상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하고 ‘권력의 독립된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명기했다.

저널리즘이 시민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명제는 직업적 자부심 이상의 것이며, 시민과 맺은 묵시적 계약일 수도 있다. 쓸모 있고 가치 있는 정보를 시민에게 알려주어 비판과 논평을 위한 공개 토론장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민주주의가 성숙된다.

독자는 단지 ‘고객’에 그치지 않는다. 신문사는 ‘신문이란 상품’을 판다기 보다 진실을 알려주어 사람들이 스스로 각성하고 올바른 사회를 구성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는 “진실을 추구함에 있어서 본지는 대중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물질적 이익을 희생시킬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모쪼록 완도신문이 진실을 추구하되 사실을 버리지 아니하며,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완도 주민의 대변지로서 우뚝 서기를 기대한다.

* 필자 김주언은 <한국일보> 기자 시절이던 1986년, <말>지를 통해 전두환 정권이 각 언론사에 하달한 '보도지침' 584건을 폭로해 국가보안법 위반, 외교상 기밀누설, 국가모독,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이 사건은 국내는 물론 영국과 미국의 인권, 언론단체들에까지 알려져 석방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검찰의 무리한 법적용은 9년여의 재판과정 끝에 무죄 확정판결로 이어졌다. 김주언은 이후 한국기자협회 회장,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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