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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조개 눈을 알아야 조개를 캐지"

강제윤 시인 - 인천 신도, 시도, 모도 기행(1)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3.10.10 09:05
  • 수정 2015.11.1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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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거북시장에서 112번 버스를 탄다. 신현 치안센터 정류장에서 밤색 외투를 입은 여자 하나 차에 오른다. 버스는 빈 좌석이 많다. 여자는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주저 없이 빈자리에 가 앉는다. 거침없는 여자의 태도가 부럽다. 나는 버스에 오른 그 짧은 순간에도 어느 자리에 앉을까 계산하며 머뭇거리고 주저 한다. 빈자리가 하나뿐이라면 나 또한 선택의 여지없이 앉을 것이다. 하지만 자리가 두 개만 남아도 저울질하느라 내 머리는 복잡해진다. 대체 짧은 거리를 가는 시내버스 좌석 하나 잘 잡았다고 얼마나 큰 이득을 얻겠는가. 그 사소한 선택의 때마저도 나는 이해에 무심하지 못하다. 말이나 생각으로는 다 버리고 사는 것처럼 하면서도 실상 나는 얼마나 연연하며 사는가.

서부공단 앞에서 710번으로 갈아탄다. 버스는 영종대교를 지나 영종도 신도시로 접어든다. 공항이 생긴 지 벌써 10여년이 다 되어 가지만 나는 아직도 이 길과 이 섬이 낯설다. 공항은 영종도가 아니라 다른 세상에 속한 듯하다. 실상 공항은 영종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의 갯벌을 매립한 땅 위에 세워졌으니 공항은 다른 세상, 신세계에 있는 것이다. 낯선 땅이 낯선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인천 국제공항이 들어서기 전 월미도에서 늘 배를 타고 건넜던 영종도의 기억에서 놓여나지 못한다.

연륙교가 생긴 뒤 영종도는 더 이상 섬이 아니다. 같은 이유로 용유도도 섬이 아니다. 급격하게 불어난 땅과 신도시 덕분에 영종도 구읍 나루 터 이외에는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영종도는 인천광역시에 속해 있다. 그러나 신도시 주민들 중 자신을 인천 시민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들 중 인천 시내에 나가본 사람은 또 몇이나 될까.

710번 버스는 영종도 삼목선착장 입구에서 승객들을 부려 놓고 종점인 화물 터미널로 떠난다. 삼목 선착장이 있는 이곳도 공항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섬이었다. 삼목도. 섬은 흔적도 없다. 누가 이곳이 수 만 년 세월 섬이었던 것을 짐작이나 할까. 영종도와 용유도, 신불도와 삼목도 사이의 갯벌이 매립되면서 또 몇 개의 섬들이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삼목도에는 공항 활주로가 들어섰다. 삼목 선착장에서 철부선은 장봉도까지 하루 10회 왕복한다. 신도는 기항지다. 시도와 모도는 신도와 다리로 연결 되어 있어 배가 따로 들르지 않는다. 신도는 삼목에서 느린 철부선으로도 불과 10분 거리.  

신도 부두에서 나그네의 길을 가로 막는 것은 부동산과 드라마 세트장과 팬션 간판들이다. 한류 바람을 탄 텔레비전 드라마 세트장이 있는 탓에 부두에는 일본이나 중국 관광객들이 한국관광객 만큼이나 많다.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세트장을 찾는 외국인들도 적지 않아 보인다. 대체로 섬에 오는 사람은 두 부류다. 하나는 풍경을 따라 오고 다른 하나는 의미를 찾아온다. 풍경을 따라오는 사람은 섬의 외면에 이끌리고 의미를 찾아오는 사람은 섬의 내면에 매혹 된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서둘러 왔다가 서둘러 떠난다. 서두르지 않는 사람도 대게는 섬에 몰두하기 보다는 놀이나 식도락에 몰두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섬에 와서도 섬을 보지 못한다.

신도1리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유숙한다. 주인 할머니는 이른 아침 갯벌에 나가 주어온 굴들을 깬다. 갯벌에는 굴과 바지락, 삐죽, 가무락(모시조개) 등이 널렸어도 채취하는 사람은 드물다.

"조개가 아무리 많아도 팔 줄 모르는 사람은 못 캐요. 조개 눈을 알아야 하는데 조개 눈을 모르니까."

조개 캐는 것도 기술이다. 갯벌 곳곳에 조개가 숨어 있어도 아무나 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마을은 온통 노인들뿐이니 조개를 캐는 사람은 드물다. 고령의 노인들은 대부분 자식들의 지원이나 생활보조금으로 살아간다. 신도나 시도, 모도에 팬션들이 생긴 것은 불과 4-5년 안팎이다. 영종도에 공항이 생기고 육지와 소통이 쉬워진 때문이기도 하지만 '풀하우스'등의 드라마 세트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섬이 유명세를 치루면서 갑자기 관광객들이 늘었다. 그래도 관광업 종사자는 많지 않다. 신도 3리 쪽은 논이 많아 농사가 많다. 지금도 몇집은 어선을 부리지만 20여년 전부터 어장이 죽으면서 어업이 급격히 쇠퇴했다.

여자는 용유도 을왕리가 고향이다. 시집와 36년을 신도에서 살았다. 옛날에는 이 섬에도 조기잡이 배들이 많았다. 신도 1리 마을에 지금은 30여 가구가 살지만 한때는 170가구 까지 산 적도 있다. 선원들 10여명을 부리는 중선배가 17척까지 있었다. 중선 배들은 조기철이면 연평도 근해로 가서 조기를 잡았다. 신도 선창가 앞바다에서는 민어를 잡았다. 시아버지는 중선 배를 두 척이나 부리는 큰 선주였고 인천에 상회까지 가진 부자였다. 그때는 신도가 부천군에 속했을 때였고 시아버지는 부천군 어업조합 이사까지 지냈다.

"시아버지가 이 앞 바다에서 민어를 잡았어요. 사람만한 거 배로 하나씩 잡고 그랬지요. 큰건 아주 대단히 컸어요. 그 냥반 굵고 짧게 사시다 가셨지."

여자는 대단했던 시아버지가 여전히 자랑스럽다. 하지만 시아버지가 병에 걸리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여자는 남편과 함께 꽃게잡이를 다녔다. 인천 앞바다의 섬은 안 가본 곳이 없다.

"꽃게 잡으러 문갑도까지 갔었어요. 20년 전에는 꽃게잡이로 돈 엄청 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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