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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사람과 도깨비가 함께 살던 섬

강제윤 시인 - 통영 학림도 기행(1)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3.11.14 11:55
  • 수정 2015.11.1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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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나 돌이 변해서 생기는 도깨비 도깨비, 세상에 이보다 더 어리숙한 신(神)이 또 어디에 있을까. 어린 시절 고향 섬마을 산속 외딴집에 살던 친구의 아버지는 밤마다 고갯길에서 도깨비를 만났다. 친구 아버지는 그때마다 술에 취해 있었고 도깨비는 언제나 씨름을 하자고 졸랐다. 하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친구 아버지의 완승. 다리가 하나뿐인 그 도깨비는 씨름으로는 결코 다리 둘인 사람을 이길 수 없다. 그런데도 지치지도 않고 씨름을 하자고 덤비는 미련함이라니! 친구 아버지가 다음날 낮에 멀쩡한 정신으로 도깨비와 씨름하던 장소에 가보면 쓰다버린 빗자루가 있었다 한다. 여름밤이면 마당에 멍석을 깔고 앉아 들었던 다른 도깨비 이야기들도 결코 무섭지가 않았다. 섬은 온통 도깨비와 귀신 투성이였다. 사람과 도깨비, 귀신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던 시절의 이야기다.

학림도에도 도깨비가 유난히도 많았다 한다. 그래서 박민출 학림도 이장님(74세)의 도깨비 이야기는 끝이 없다. 도깨비는 민간신앙에서 믿어지는 초자연적 존재 중 하나다. 도채비·독각귀(獨脚鬼)·독갑이(狐魅)·허주(虛主)·허체(虛體)·망량(魍魎)·영감 등의 다양한 이름을 지니고 있다. 귀신과는 달리 도깨비는 인간에게 크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심술궂고 장난을 좋아하지만 도깨비는 자신이 가진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인간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제주도를 비롯한 섬 지방에서는 더러 집안의 수호신인 ‘일월조상’이나 어선의 수호신, 대장간의 신, 마을의 당신(堂神)으로 모셔지기도 했다.

귀신은 사람이 죽은 뒤 그 영혼이 변한 것이고 도깨비는 돌이나 나무 같은 자연물이 변해서 생긴 것이라 믿어진다. 조선 중기의 학자 권별의 문헌 설화집인 ≪해동잡록 海東雜錄≫에도 “도깨비는 산과 바다의 음령(陰靈)한 기운이며, 풀·나무·흙·돌의 정기가 변해서 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사람이 쓰던 물건이 변해 도깨비가 되기도 한다. 부지깽이나 빗자루, 절구공이, 소쿠리, 방석 같은 것을 버리면 도깨비로 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 시골에서는 그런 것들이 도깨비로 변하지 말도록 불에 태워버리곤 했었다.

 


친구처럼 지내던 도깨비
학림도의 도깨비는 주로 한밤중 산과 들에 많이 나타났다. 이장님도 어린 시절에는 도깨비불 구경을 많이 다녔다. 작은 시미기 뒷산 애기당에 도깨비불이 많았다. 애기당은 아이들이 죽으면 항아리에 담아다 내놓는 공동묘지였다. 아이들은 뼈가 부드러워 오래가지 않아 항아리 속에서 녹아 없어져 버렸다. 그 애기당 부근에 엎드려 있으면 애기 우는 소리가 들리고 도깨불이 켜져서 밤하늘을 돌아다녔다.

이장님은 아버지에게 도깨비 애기를 많이 들었다. 이장님의 아버지는 밤에 낚시를 하려고 바닷가에 앉아 있으면 어김없이 도깨비가 나타났다 한다. 도깨비는 “어이 친구 왔나?” 하면서 옆에 앉았다. 도깨비와 이런 저런 이야기도 했다. 물고기가 잡히면 도깨비는 그것을 손으로 주물주물 거렸다. 아침 해가 뜨자 도깨비는 사라져버리고 이장님 아버지는 잡은 생선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생선을 꺼내자 알맹이는 없고 껍질만 남은 것이 아닌가! 그것은 필시 도깨비의 장난이었다.

이 섬의 도깨비도 밤에 술 취한 사람을 만나면 어김없이 씨름을 하자고 덤볐다. “어 친구 왔나! 씨름 하세”하면서 허리끈을 잡았다. 학림도의 도깨비는 사람보다 키가 세배는 컸지만 왼쪽 다리를 넣으면 반드시 넘어가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오른 다리로 걸면 절대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많이 취한 사람이라도 왼쪽 깨(다리)만 넣으면 도깨비를 이겼다. 도깨비를 넘어뜨린 뒤에는 쫓아오지 못하게 바지 끈으로 묶어 놓았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가보면 어김없이 빗자루나 소쿠리 같은 것이 끈에 묶여 있곤 했다. 사람 때가 묻은 것을 버리면 도깨비나 귀신이 붙는다는 속설 그대로였다.

바다에서도 도깨비불이 나타나는 자리를 가면 멸치가 많이 잡혔다. 섬에는 도깨비만큼이나 귀신도 지천이었다. 바다에서는 도깨비보다 주로 물귀신을 만났다. 고기잡이를 하다가 어부가 고단해서 뱃전에 누워 까무룩 잠이 들려고 하면 바다 속에서 털 난 손이 쑥 올라와 어부를 물속으로 끌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물귀신은 어부의 상투에 맨 은동구(은동곶) 때문에 어부를 끌고 갈 수 없었다. 여자의 비녀처럼 남자의 상투에 꽂던 장신구를 동곶이라 한다. 학림 섬사람들은 은이 잡귀를 쫓는 주술적 기능이 있다고 믿어서 늘 은동구를 부적처럼 지니고 다녔다. 섬에 귀신이나 도깨비가 많다보니 그것을 방지하는 비방도 성행했다. 집집마다 사진 액자에 탱주(탱자)나무를 잘라다 붙였다. 탱자가시가 무서워 잡귀가 안 붙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어느 섬이나 도깨비가 없는 섬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학림도는 이 근방 섬들 중에서도 유달리 도깨비가 많았던 섬이다. 도깨비 이야기를 잘 채록해 두는 것도 섬에 큰 자산이 될 듯하다. 도깨비 섬 학림도. 우리의 삶과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는 도깨비들을 다시 불러낸다면 섬은 어느 곳보다 더 신화적인 공간이 되지 않겠는가. 신화가 사라진 섬은 더 이상 신비롭지 않다. 신비가 없다면 삶 또한 더 이상 신비로운 것이 아니게 될 것이다. 도시의 삶이 신비감을 잃은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섬이 신비를 잃은 도시민들에게 삶의 신비를 되살려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얼마나 신비로운 일이겠는가. 삶에 지친 도시의 어른들과 신화를 잃어버린 도시 아이들을 섬마을로 불러 모아 섬의 노인들이 도깨비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이는 단지 신비로운 이야기의 향연에 그치지 않고 지혜의 집단 전승이 될 것이다. 이는 또 우리 아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자양분이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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