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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천당도 극락도 오직 마음속에 있소”

강제윤 시인 - 보령 고대도 장고도 기행(3)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4.02.27 10:31
  • 수정 2015.11.10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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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마을 안길을 따라 걷는다. 좁은 땅에 작은 집들이 바짝 바짝 붙어있다. 바람에 날아가지 못하게 서로가 서로를 붙들어 주고 있다. 산길을 오른다. 고개를 넘으면 당 너머 해수욕장이다. 고개 마루에 이르니 가건물로 지은 절이 하나 있다. 도리사. 빈 절은 아닌 듯싶은데 인적이 묘연하다. 스님은 어디 가셨나. 뭍으로 출타라도 하셨나. 불러도 대답이 없다. 법당 문이 잠기지 않은 것을 봐서는 사람이 사는 절이지 싶은데. 그냥 내려가려다 돌아보니 길 건너에 오두막집이 한 채 있다.

저기가 요사채인가. 다가가니 방안에서 라디오 소리가 들린다. 문을 두드리자 노승이 문을 열어주며 어서 들어오라신다. 혼자 눕기도 어려울 만큼 방은 비좁다. 누더기를 걸친 노승은 전기장판을 켜놓고도 몸이 추운지 이불을 덮고 앉았다. 팔순의 노승은 운수행각으로 세상을 떠돌다 10년 전에 이 섬으로 흘러들었다. 세계를 두 바퀴나 돌면서 "나를 찾아 다녔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이 섬에 들어온 것도 혹시 "나"를 찾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노승은 이제 더 이상 나를 찾지 않게 된 것일까. "배고프면 먹고, 가는 디 신경 써야지. 가는 디 신경 써야지" 말씀만 되뇐다. 요새는 도통 도통할 생각도 않고 그저 "진언만 외며" 산다. 종일토록 법화경만 왼다. 섬에 들어와 10년을 한결같이 법화경을 읽었지만 그 또한 꿈속이다. 법화경 속에 길이 있다고 10년을 읽었으나 끝내 나를 찾지 못했다.

노승은 부모가 누군지도 모른다. 태어나자마자 대전의 보문사라는 절에 버려졌고 절을 세운 노 보살 손에서 자랐고 자연스럽게 스님이 됐다. 태어나 80년을 불문에 있었다. 이 또한 한바탕 꿈이었다. "꿈속에서 헤맸을 뿐이다." 80년을 수도하고 경전을 외웠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노승은 "어제 밥 먹고 똥을 쌌는데 오늘도 밥 먹으면 똥을 싼다." 그것이 전부다. 노승뿐이랴. "나를 찾는다고 산속에 많이들 앉아 있지만 보여주지 않으니 알 수가 있나. 가는 걸 보는 사람도 오는 걸 보는 사람도 없으니."

노승은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석주스님을 오래 모셨다. 그때 노인의 나이 40이 갓 되었을 때니 벌써 40년 전이다. 석주스님이 "다 잊어버려라" 하니 그때부터 40년 살아온 세월을 다 잊고 살았다. "7세 동자로 10년을 모셨다." 7세 동자처럼 그저 시키면 "네네"만 하면서 살았다. "그때 내 별명이 네네 였소." 노승의 눈가에 웃음기가 어린다. 그렇게 10년이 지나자 "절을 지으라" 하시니 그때부터 또 10년은 절집만 지었다. 온양의 보문사다. 절을 다 지었는데 "짓고 나니 허망하더라." 그때 마침 원효종 종정 법흥스님을 만났다. "우주를 한 바퀴 돌자" 하길래 함께 세계를 돌았다. 법사대학를 세워서 운영도 하고 그렇게 또 10년이 흘렀다. 그래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 “알고 보니 전부 밥 먹고 똥 싸는 것 뿐”이었다. 어디서 부처를 찾을 것인가? 알고 보니 자신이 부처인 것을! 하지만,


"사람들은 전부다 만들어놓은 불상에 매달리고 중들은 그 신도들한테 의지해서 살아. 그건 거꾸로 된 불교지. 내 속에 불성이 있으니 나를 찾아, 내안의 부처를 찾아야지. 사람들은 그저 너를 찾으려고만 해. 물질을 찾고 연인을 찾고 가족을 찾고. 그러니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노예가 되는 것이지. 진짜 나는 잊어버리고 오로지 너만 찾아다니니까. 큰 스님들을 모셔 봐도 깨달음에 대해서는 별 말씀 없으시고 자꾸 뭐를 하라고만해. 절을 지어라. 명예를 드높여라. 그러실 뿐이지. 큰스님들도 다들 자성을 찾지 못했어."

그렇다면 세계를 헤매고 다니는 것이 또 무슨 소용이랴. 그래서 다 버리고 이 작은 섬의 산중으로 숨어들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도무지 나를 찾을 길은 없다.
"해가 쨍그랑 떴는 디 꿈꾸는 것 같아요."

처음 섬으로 올 때는 칠순의 노부부와 함께 들어왔다. 지금 그이들은 떠나고 없다. 작은 불사라도 하라고 석주스님이 쥐어준 돈이 문제였다.
"돈 욕심 채우니까 가버리데요. 내가 어리석었지."
나를 찾는데 필요한 것은 돈도 물질도, 불사 따위도 아닌데 "거기 빠져 있었던 거"였다.
“내가 나를 꾸짖어야지, 그들을 탓할 필요가 있나.”
노승은 오늘도 오직 한 생각, 나를 찾을 생각뿐이지만 끝내는 못 찾아도 무방하다.
"갈 데는 맡아 놨으니." 그곳이 어디신가. 도리천이다. 도리천은 정토다. 노승은 오직 그 믿음만은 철썩 같다.

"도리천이 대체 어디 있단 말씀입니까?"
"어디 있기는 내 마음 속에 있지. 마음이 아니면 그걸 어찌 생각 하겄소. 극락도 천당도, 부처도 예수도 오직 마음속에 있지요."
노승의 말씀이 내 둔한 머리를 친다. 노승은 이미 극락에, 도리천에 도달한 것이다. 노승의 법명은 정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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