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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대해 감시 비판기능 잃으면 더 이상 언론 아니다.

강제윤 시인

  • 강제윤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4.09.15 21:33
  • 수정 2015.11.0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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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의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약칭:민변)> 회원 변호사 20여명과 함께 청산도를 다녀왔다. 섬 전문가인 필자의 강연을 요청해와 답사에 동행한 것이다. 1박2일 동안 슬로길을 걸었다. 나는 이미 수차례 걸었던 길이지만 민변 회원들은 대부분 청산도가 처음이었다. 섬에 왔는데 물가에서 놀기보다 길을 걷는 것에 대해 몇몇 사람은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지만 그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청산도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고 나중에는 걷기를 잘했다고 했다. 그들이 청산도에서 감동 받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칭송한 것은 청산도가 함부로 개발되지 않아 자연과 사람살이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점이었다. 파괴되지 않은 자연과 잘 보존된 마을의 원형이 감동을 준 것이다. 개발이 아닌 보존이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청산도의 매력임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다.

그런데 변호사들이 청산도에서 불쾌하게 느낀 것이 딱 하나 있었다. 서편제 길 중간에 서 있는 김종식 전 완도군수의 동상이었다. 동상을 본 변호사들은 하나같이 어이없어 하며 분개했다. 군수나 시장이 재임시절 자신의 동상을 세운 경우는 어디에도 없다. 왕조시대에도 고을 원님의 선정비 같은 것은 임기가 끝난 뒤에 세워졌다. 김대중 대통령도 재임시에는 자신의 동상이 세워진 적이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재임시에 동상들이 세워졌지만 10.26 사건 이후 모두 철거됐다. 청산도가 유명관광지가 된 것은 김종식 군수의 공적이 아니다. 자연과 전통문화를 잘 보존한 청산도 주민들 덕이다. 돌담을 쌓고 구들장논을 만들었던 청산도의 옛 사람들 노고 덕이다. 군수 동상이 아니라 청산도 주민들의 공덕비가 세워져야 마땅하다. 저 흉물스런 동상은 철거 되어야 한다. 김종식 군수 동상 앞에서 온갖 성토가 이어졌다. 부끄러운 일이다. 청산도가 완도가 부끄러운 일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김종식 군수의 흉상은 세워질 당시에도 전국적인 망신거리였다. 오물을 뒤집어쓴 동상 사진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완도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이 흉상이 공유재산에 설치할 수 없는 불법 구조물인데도 관리감독청인 완도군에서 오랫동안 묵인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또 한 번의 완도 망신이다. 정관범 완도군의원은 “농지 위에 세워진 흉상건립 자체가 위법행위이고, 농지의 불법전용에 대해 원상복구 등 행정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로 처벌의 대상이다. 또한 이를 묵인하고 행해진 사후 전용신청도 불법으로 원천무효”라고 말했다. 슬로시티 체험단 일원으로 청산도를 다녀온 광주의 한 시민은,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청산도에 전 군수의 흉상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창피하고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즉시 철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쩌다 완도가, 아름다운 섬 청산도가 전국의 웃음거리가 된 것일까.

완도의 시민단체나 지역 언론의 힘이 미약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와 비판적인 지역 언론의 힘이 강했다면 ‘현직군수 동상세우기’같은 희대의 웃음거리는 연출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김종식 전임 군수 재임 12년 동안 완도의 시민단체와 비판 언론은 고사상태에 이르렀다. 전임군수의 폭정 때문이었다. 그 12년 동안 비판언론의 역할을 수행한 것은 완도신문 뿐이었다. 김종식 군수 동상 건립 당시 문제를 제기한 유일한 완도지역 언론도 완도신문이었다. 전임 군수 재임 12년은 완도신문의 수난사였다. 하지만 권력보다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것이 언론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군수는 퇴임했지만 완도신문은 여전히 건재해 창간 24주년을 맞이했다. 창간 기념일을 축하한다. 하지만 축하한다는 말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완도신문의 생존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다. 완도신문은 완도의 비판 세력을 씨도 남기지 않고 말살하고 봉건영주처럼 전횡을 일삼던 전임 군수의 노골적인 탄압에서도 결국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많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명예훼손죄를 남용해 자신의 비리를 폭로한 지역 신문사들을 탄압해 왔다. 하지만 어떤 지역신문사도 단체장에게 완도신문처럼 지속적이고 무자비한 탄압을 받은 곳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완도신문은 꿋꿋이 ‘정론직필’의 자세를 유지하고 살아남았다. 완도신문은 그동안 153번이나 피소를 당했지만 그중 151번을 승소했다. 중앙언론사라 할지라도 그 정도의 탄압이면 무릎을 꿇거나 파산을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완도 신문은 비굴하지도 나약하지도 않았다.

완도신문이라고 왜 적당한 타협을 통해 편안한 길을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완도신문이 권력에 대한 감시라는 언론 본연의 임무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 기능을 잃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언론이 아니다. 권력의 나팔수요 홍보지일 뿐이다. 언론은 권력의 비리를 감시하고 고발하는 동시에 주민의 혈세가 주민을 위해 쓰이는지 감시해야할 의무가 있다. 또 그 혈세가 바르게 쓰이는지를 납세자인 군민독자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언론은 더 이상 언론이 아니다.

그런데 아직도 권력의 나팔수를 자처하는 지역신문들이 수두룩하다. 이들은 권력에 아부한 대가로 광고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이득을 취한다. 이런 신문들은 대부분 무가지 형태로 발행되거나 선거때 반짝 비출 뿐이다. 독자들도 그런 신문을 돈 주고는 사보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완도신문은 지금껏 유가지를 고수해왔다. 김종식 전 군수는 주민의 혈세로 집행되는 홍보비를 이용해 자신에게 우호적인 신문사에만 광고를 실어주고 완도신문에는 광고를 게재하지 않는 광고 탄압을 자행했다. 완도신문이 이러한 탄압에도 꿋꿋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구독료를 내고 신문을 봐준 유료 독자들 덕분이었다. 이들은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해온 완도신문의 진정성을 알아주었다고 봐야 한다.

지역신문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복지 등 전반적인 소식지의 기능뿐만 아니다 지역주민의 민원 해결, 지역 토호세력과 기득권에 대한 견제, 향토사 기록 등 다양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갈수록 지역신문의 역할이 커질 수 밖에 없다. 향후 완도신문의 역할이 더욱 기대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사랑과 후원만이 완도신문이 정론직필의 바른 길을 가는데 버팀목이 될 것이다. 더 많은 후원과 사랑 부탁드린다. 완도신문에 대한 관심은 완도 사랑에 다름 아니다.

- 강제윤: 보길도가 고향이다. 시인, 섬여행가, 인문학습원 <섬학교> 교장. 한국의 유인도 500여개 중 300여개의 섬을 답사 한 뒤 글과 사진으로 기록 했고 지금도 여전히 섬을 답사 중이다. <보길도에서 온 편지><걷고 싶은 우리 섬><섬을 걷다><어머니전><통영은 맛있다>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