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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시간이 흐르는 완도가 되기를 바란다

  • 김재욱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4.09.15 21:34
  • 수정 2015.11.0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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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욱씨는 전생에 완도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신흥사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한문학당 선생으로 있을 때 절에 다니는 할머니 한 분이 하신 말씀이다. 2000년도에 몸과 마음이 아파서 잠시 쉬려고 내려왔던 완도. 한 달 정도만 머물다가 떠날 생각이었는데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이 좋아 1년을 꼬박 완도에 살았다. 그 때 주지스님은 내 전공이 한문학인 걸 아시고는 ‘이곳 아이들한테 한문을 가르쳐 볼 생각이 없느냐’고 하셨다. 덧붙여 ‘이 곳 아이들은 도시 아이들에 비해 아무래도 교육이나 문화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도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인연으로 그 해 겨울방학부터 방학 때마다 완도의 어린이들과 만났다. 한 번에 30 여명이 참가했고, 6년을 계속했으니 나한테 배운 아이가 최소 300명은 되는 셈이다. 이후에도 꾸준히 완도의 어린이들과 좋은 인연을 이어갔다. 인자한 웃음을 짓던 그 할머니의 말씀에 나의 완도에서의 삶과 완도를 아끼는 마음이 다 들어있다.

방학 기간일 뿐이었지만, 몇 년을 완도에 살면서 자연스레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녔다. 정도리 밤바다에 자갈 굴러가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새롭고 상쾌했다. 이제는 다리가 놓여 편하게 갈 수 있지만, 명사십리로 가는 배를 기다리는 마음은 늘 설렜다. 예로부터 선비들이 많이 살아 ‘글 자랑’을 했다간 큰 코 다치는 곳 청산은 서편제와 풀하우스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아름답고 멋진 곳이었다. 생각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그 옛날 바다를 호령했던 장보고의 숨결이 살아 있는 청해진 유적지, 우리 역사 상 가장 뛰어난 제독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머물렀던 고금도, 우리 문학사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윤선도와 지금까지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선비 송시열이 살았던 보길도, 이 밖에도 완도의 자랑거리는 매우 많다.

‘전생에 완도 사람’이었으므로 이곳의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청소년, 어른들과도 인연을 맺었다. 사람 사는 곳 어디든 문제가 없는 곳이 없다는 말처럼 이처럼 좋은 곳에도 아쉬운 점이 있었다. 완도에는 청소년들이 문화생활을 누릴 곳이 없다. 이것은 처음 완도와 인연을 맺었던 2000년도나 14년이 지난 오늘에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물론 부분적으로 조금씩 나아졌다고 보지만 눈에 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다. 이러니 필연적으로 동네마다 PC방이 많을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 많은 학생들이 완도를 떠나고 있다. 지역주민들과 완도의 지역정치를 책임지는 분들이 이 문제에 주목해 주기를 기대한다. 청소년들은 완도의 미래를 짊어질 사람들이다.

말이 나온 김에 씁쓸한 이야기 한 마디 더 해야겠다. 알다시피 완도는 새정치민주연합의 텃밭으로 불리는 곳이다. 과연 이 정당이 꾸준한 지지를 보내주고 있는 완도군민을 위해 얼마큼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완도는 김영록 의원의 지역구다. 김 의원은 지역을 대표하는 신문에 자신의 의정활동을 알리지 않으면서 중앙일간지나 SNS에는 꼬박꼬박 자신의 활동을 알린다는 말을 들었다. 실제 열심히 일을 하고 하지 않고의 여부와는 별개로 완도를 자신의 기반으로 삼고 있는 정치인이므로 이런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김 의원은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구조대를 출발시킨 곳이 완도라는 사실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구조대는 진도에 도착했지만, ‘돌아가라’는 해경의 말에 눈물을 머금고 철수 했다고 들었다. 또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완도군민들의 관심도는 크게 높지 않다고 한다. 전적으로 정치권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으나 지역 내에서 김 의원의 활동이 없었거나, 있었다 하더라도 매우 미미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새누리당에 자리를 내 준 순천의 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는 완도뿐만 아니라 호남에 뿌리를 두고 있는 다수의 새정연 의원들이 명심해야 하는 일이다.

신흥사에서 아홉 살 때 나한테 한문을 배웠던 학생이 있다. 그 학생은 지금 대학생이 되었다. 십여 년 이상을 서로 만나며 정을 쌓은 친구다. 얼마 전 추석연휴에 안부전화가 왔다.

“선생님, 추석 잘 보내세요.”
“그래. 고마워. 너 완도 내려갔냐?”
“네. 지금 완도에 있어요.”
“하하, 그렇구나. 나 없는데 완도는 잘 있나?”
“아, 그럼요. 아주 잘 있습니다.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잘 있어요.”
“그런가?”
“변한 게 하나도 없어서 여기 오면 시간이 멈춰 있는 거 같아요.”
“…….”

시간이 흐르는 완도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제 24살, 혈기왕성한 나이가 된 완도신문이 멈춰 버린 시계를 움직이는데 큰 역할을 해 주리라 기대한다. 완도신문의 창간 24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김재욱(작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