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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식 소원 들어준 보길도 월송리 산당

김하용(완도 향토문화연구가)

  • 김하용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5.06.25 09:24
  • 수정 2015.11.04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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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용(완도 향토문화연구가)

보길도 월송리는 면 소재지에서 동쪽 방면 버스로 약 5분 거리에 있다. 북쪽으로 청별리, 동으로 통리, 남쪽의 예송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마을 뒤편으로 병풍처럼 펼쳐진 나지막한 야산이 포근하게 감싸고 산 정상에는 노적바위가 우뚝 솟아 있으며 그 밑 강대바위가 평평하게 소나무 사이로 빼꼼히 내다보인다. 능선을 따라 한참 내려오면 산태바위(아이들이 잔디 위에서 비료 포대 등 을 가지고 미끄럼 타는 곳)를 만나게 되는데 그 아래쪽 동백나무, 소나무가 울창한 곳에 물맛이 아주 좋은 약샘(당샘)이 있는 숲속에 산신당이 있다. 마을에서는 이곳을 산신령을 모신 당이라 하여 산당이라 부르며 제를 모시는 신명을 산신당 할머니라 한다.

당집 내부에 ‘남무대덕산왕지위(南舞大德山王之位)’라 쓰인 신체를 봉안하고 있다. 매년 마을 전 주민들은 이름을 적어 소지를 올린 다음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요, 가축의 번성, 무병장수, 아들 낳기 등을 기원한다. 특히나 많은 사람들이 효험을 봤다는 무자식 가정은 자식을 갖기 위해 지극 정성으로 소원을 비는 곳이기도 하다.

당 우측 직사각형 바위 위에 지름 30㎝정도 된 둥근 돌 2개가 놓여 있었는데 몇 십 년 전에 자식이 없는 어느 가정에서 가져가 버리고 지금은 하나만 놓여있다. 오래 전에 동민 모두가 참여해 제 지내기 15일 전에 마을 총회인 섣달보름 공사에서 제주 1명과 집사 2명을 선출하고 제비를 예산 결정하여 집행했다. 제주는 부정이 없고 생기 복덕과 나이가 맞는 자를 선출한다. 이장은 산신제를 주관하는 역할을 맡는다. 제물은 제주가 구입하여 골질산에 있는 당 약샘에서 물을 길러다 사용했고 진설하는 제물로는 꼭 소 오른쪽 다리를 올렸으나 요즘은 간소화하여 소고기 3근, 조기, 명태, 채소, 과일과 메 3그릇, 국 3그릇, 술 등을 올린다. 제는 진설-헌작-재배-구축-재배-소지-음복 순으로 진행한다.

구축 내용은 “갑술년 새해에 산신당 할머니에게 제사를 올립니다. 마을민의 안녕과 건강을 보살펴 주십시오”이다. 음복은 제에 참여한 제주, 집사, 이장만 하고 나머지 제물은 제장 주위 땅에 묻는다. 제를 지낸 후 마을 사람들은 사전 준비된 풍악을 올리며 마을 집들을 찾아다니며 지신밟기를 시작한다. 가정에 액운을 쫒아내고 만복이 들어온다고 믿고 있는 주민들은 쌀과 돈 그리고 약주와 안주를 푸짐하게 내놓는다. 어떤 집들은 모든 일이 잘 풀리기를 바라는 뜻으로 실타래를 상위에 올린 가정도 있고 쌀을 지붕에 뿌리는 등 집안 곳곳에 술을 부어 액운을 쫒는 여러 가지 풍습들이 있었다. 지금까지 거르지 않고 간소하게 당제를 지내오고 있으며, 마을 주민들의 믿음도 강하다. 이는 마을 주민 모두 산신당 할머니가 영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옛날 당굿을 치는데 조리중 역할을 담당한 이 마을에 사는 사람이 당 할머니 앞에서 버릇없이 못된 초랭이 짓을 하다가 불구자가 된 일이 있다고 이장이 귀띔한다. 또 한 때는 할머니당에 제물을 가지고 올라가는데 큰 뱀 한 마리가 당 앞을 가로 막고 있어 마을 사람들은 제물 준비에 부정이 탔다고 믿고 마을로 돌아와 한 달이 지난 다음 다시 청결하게 제를 올렸다고 한다.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모셔온 할머니당에 지금은 신경 써 제를 올릴 사람이 없고 이장이 간단하게 몇 가지 제물을 준비해 제를 올리고 개별적으로 소원을 비는 사람도 있다. 젊은 사람들이 모두 도시로 떠나고 마을에 노인들만 살기 때문이다.

당은 우리 조상들의 정신적 지주이며 마을의 역사를 말해준다. 또한 당은 소통과 화합을 위한 뿌리 깊은 문화유산으로 무진장 많은 미개척 향토문화유산이 있으나 점차 잊혀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시급히 문화 역사를 가려내고 발굴해 길이 보존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