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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장보고 대사가 탄생하려면

박주성(장보고아카데미 팀장)

  • 박주성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5.08.12 11:09
  • 수정 2015.11.04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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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성(장보고아카데미 팀장)

반도는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곳으로, 대륙과 해양으로 진출하는 교두보이기도 하다. 그런고로 반도국의 국력이 약하면 주변 국가의 침략을 받기 쉽고, 강하면 세력을 확장하기 용이한 역사적 사실이 반도 국가의 특징으로 고착화됐다. 특히 주변 4강(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에 둘러 쌓여있는 한반도의 경우 땅따먹기식 영토 확장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결국 앞으로 우리에게 경제 영토를 개척하고 확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로 나타날 수밖에 없게 되어버렸다. 그런데 1,200년 전에 이미 우리 선조 중에 그런 분이 계시니, 그가 바로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동북아 해상무역을 장악하고 주도했던 장보고 대사이다.

그러나 신라는 물론이고 당나라와 일본에까지 이름을 널리 떨친 국제적 인물 장보고 대사는 신라 귀족들이 보기에는 한갓 미천한 섬사람일 뿐이었다. 장보고는 신라 말기의 치열한 왕위 다툼 과정에서 이들에게 암살당하였고 청해진은 폐허가 되었다. 신라의 제해권도 상실되었다. 장보고 대사가 죽음으로써 청해진은 붕괴되어 장보고의 해상 왕국은 하룻밤의 꿈으로 끝났다. 이후 오늘날까지 우리는 바다를 잃고 해양을 주도하지 못한 채 좁은 반도 안에 갇혀 아직까지 날아오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역사적 과정 속에서 우리는 제2의 장보고 대사 탄생을 위해 장보고 대사의 글로벌 마인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왕위 다툼이 한창이었던 신라 사회에서 과연 글로벌 인물 장보고 대사 탄생이 가능했을까? 어린 시절 장보고 대사가 중국 당나라로 건너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결국 골품제라는 특유의 신분 구조가 지배하는 신라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왕위 다툼에만 골몰한 나머지 백성의 삶을 돌보지 못한 지도층 때문에 발생한 궁핍한 생활이 바로 그 이유이지 않았을까.

영국의 역사학자 E. H. 카는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역사적 사실은 그 사실 자체만으로는 아무 것도 말할 수 없고, 역사가가 불러줄 때만 말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장보고 대사가 동북아 무역을 주도한 글로벌 인물이라는 역사적 사실 그 자체만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의 신화를 먹고 살고 있지 않은가 되물어 볼 필요가 있다.

장보고 대사가 부활하고 제2의 장보고 대사가 탄생하려면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의 장보고 대사와 대화해야 한다. 글로벌 마인드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완도 사회는 능력제 위주의 사회로 변모하고 있는지, 또 우리 내부의 부정부패와 부조리에서 벗어나 있는지 말이다. 우리가 진정한 장보고 대사의 후예라면 청산도 슬로우걷기축제 때 부족한 선박 수요로 인한 관광객 운송 문제를 그리 처리했을까? 한려해상처럼 수상버스라는 대안이라도 내놔야 하지 않았을까? 일본 수송 화물선의 왕래가 끊기는 것을 그대로 두고 봐야 했을까? 추가시키지는 못할망정 활성화 방안이라도 있었어야 되는 것 아니었을까? 건어물 유통 주도권을 다른 지역이 빼앗도록 그대로 두었을까? 완도 김과 멸치의 명성은 과연 어디로 갔을까? 전복 수출이 다른 나라에 밀리도록 했을까? 경쟁력을 갖출 품질 개선이나 유통망 구축을 준비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런 마당인데 우스갯소리로 들리는 “완도에서 영웅 나오기 힘들다”라는 편협한 마음을 ‘우리가 남이가’라는 연대의식으로 우리가 합리화시켜도 되는 걸까? 제2의 장보고 대사는 못되더라도, 앞으로의 후손들을 위해 우물 안 개구리는 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