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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리포트 - 신지면 가인마을어진사람들이 사는 곳 가인마을
김영란 기자 | 승인 2015.08.27 15:57
   
 


가인마을은 노학봉에서 동쪽으로 내려 담재와 삼밭재산을 거쳐 산줄기는 월양리마을로 이어진다. 전주이씨 선산인 가을마을 뒷산 명산은 철새도래지다.

동네서편은 신기천 하류로 과거 감조구간이었으나, 수문을 만들어 그 유입을 막아 간척지로 변했다. ‘모래등들’이라고 부르며, 지금도 바닷물이 들어오면 마을 앞 수문까지 숭어 등 바닷고기가 몰려든다.

김해김씨가 지금의 가인리(갯)에, 초계최씨가 지금의 동촌(아랫가인)에 입주해 살게 됐으며 강원도에서 전주이씨가 이사와 웃 갯마을과 아랫 갯마을이 합해져 동네가 형성됐다고 전한다.

특히 청산처럼 가인마을은 초분 장례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가장골’이라는 가인마을 북쪽 골짜기로 가묘인 초분을 만들었다가 이장했다.

나이가 지긋한 마을분들은 아직까지도 사당나무 노송에 대해 한마디씩 한다. 수 백년이 된 노송이 있었는데 당시 인근에 모래가 많이 쌓여 있어 사장나무라 불리었다. 이 노송은 나무둘레가 성인 네 사람이 손을 벌여 안아야 할 정도로 밑둥이 컸는데 안타깝게 1959년 사라호 태풍에 넘어져 고사됐다고 한다. 나무 아랫부분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 박쥐가 그 속에서 살았으며 명절이면 그네를 메달아 탔다는 노송은 마을사람들에겐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아있다.

가인마을이라 이름 지어진 이유는 여러 이야기로 나뉜다. 그 중 하나는 월부리 마을에서 분구될 시 갯마을과 간척지인 모래 등 들이 더해지고 두 갯마을이 합해져 생긴 뜻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어진 사람들이 산다는 의미와 가랑이 같다는 뜻으로 가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곳마을에는 ‘최장군혈’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초계최씨 선산 묘 아래쪽 20m 지점에 있다. 양쪽으로 고랑을 길게 파 놓은 곳이다. 한일합방 당시 이곳이 명당이라하여 최씨 집안에서 장군이 나왔다고 믿고 묘 밑 양쪽을 파고 불을 피워 폐 장군 혈이 되고 하고, 다시는 장군이 나오지 못하도록 불을 피웠다고 한다. 지금도 주위를 파면 숯 덩어리가 나온다고 전해진다. /김영란 기자

 

김영란 기자  gjinews052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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