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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을 통해 진실한 사랑을 배워가고 있었다

배민서(미국거주, 호스피스 간호사)

  • 배민서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6.07.11 09:37
  • 수정 2016.07.1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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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서(미국거주, 호스피스 간호사)

"민서야~ 얼룽 와 이거 무그라~" 가제 손수건에 담긴 돼지 수육 몇 점과 절편 몇 덩어리는 엄마가 잔치집에서 먹질 않고 나를 위해 가져오신 맛난 음식이었다. 그렇게 엄마는 늘 자신보다 가족들을 생각하셨다. 밥상을 정성껏 차려 아버지와 우리들에게 주시고는 자신은 누룽지에 신김치 국물 만 대충 드시고 배 부르다고 하셨다.

 "그저 엄지 발톱 하나가 빠졌을 뿐 이었는데......" 엄마는 자신을 돌보지 않으시고 행상을 하셨고, 겨울이면 미역 공장을 다니셨고, 땔감을 구하려 산에 나무를 하러 가셨다. 그리고 치료되지 못한 오랜 상처로 인해 결국은 암으로 전이되어 내가 열 세 살이 되던 해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엄마를 떠나 보낸 후 암담한 나날 들이 계속되었고, 쇄약하신 아버지는 자본도 없이 미역로스 장사를 시작 하셨다. 새벽마다 언니와 나는 미역 자루들을 리어커에 실어 주도 앞, 한적한 부둣가에 끌어다 놓고 학교에 가고는 했다. 아버지는 사람들을 동원 해 미역을 깨끗이 씻어 햇볕에 고슬고슬 말리셨다. 학교에서 돌아 와 마른 미역들을 작은 비닐봉지에 담아 비닐 아구를 촛불로 봉하고 커다란 박스에 일정량을 채워 부산에 있는 건어물 도매상으로 넘겼다.

그리고 내가 여고를 졸업 할 무렵에는 소 규모의 미역줄기 공장을 시작하셨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텍사스에서는 너무나 귀하고 맛있는 미역줄기가 그 당시, 우리 집에는 해야 할 일거리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넓적한 미역줄기들을 한 손 가득 잡힐 때까지 나란히 잡은 후 두 손으로 불끈 쥐고 촘촘히 박힌 대못에다 훑으면 미역줄기는 가느다란 면발처럼 찢겨져 나온다.

그렇게 찢은 미역줄기의 보관을 위해 언니와 나는 염장 일을 했었다. 한 여름 무더위에 소금을 부어 미역을 섞다 보면 땀에 절은 우리들도 하얀소금으로 흠뻑 뒤집어 쓰게 되었다. 우리 집 주위에도, 완도 거리에도 깔린 것은 온통 미역이었고 열 아홉살, 꽃처럼 피어나야 할 나는 미역 냄새에 찌들어 살고 있었다.

"이렇게 살다보면 평생 미역 일만 하다가 생을 마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아무도 바라지도, 시켜주지도 않는 공부를 해 보겠다고 무작정 완도를 떠났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가 고향을 떠나 진학을 준비한지 4개월 만에 아버지는 위암 말기 진단을 받으셨고 치료를 포기하시고 고향에서 운명을 달리하게 되셨다.

나는 한 동안 미역을 먹을 수가 없었다. 미역을 볼 때 마다 미역 냄새를 맡을 때 마다 나에게 밀려들던 어린시절의 아픔들이 아릿하게 다가 왔기 때문 이었다. 공부 하겠다고 아버지의 마지막 임종도 지키지 못했던 이기적인 막내 딸이라는 자책도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몇년이 지나지 않아 고향 완도와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나는 다시 미역을 찾게 되었다.

이제 나에게는 어린 시절의 힘들었던 경험들이 더 이상 상처도 아니고 아픔도 아니다. 애틋한 추억이며 나를 성장시켜 준 고귀한 자양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미역은 칼슘과 요오드, 섬유질 함량이 높아 공해와 비만, 성인병으로 부터 우리를 지켜주고 싶어하는 엄마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이곳 텍사스에서 내가 섬기는 한인교회 교인들을 위해 한 달에 한 번은  꼭 미역국을 끓인다.

"끓여주신 미역국 정말 맛있어요!" "어떻게 끓이셨어요?" 모두들 입을 모아 나에게 질문을 한다. 나는 미역국을 끓일 때 참기름을 두르고 소고기와 잘 씻은 미역을 볶다가 육수를 부어 미역이 완전히 몸을 풀 때까지 끓인 다음에서야 국에 간을 맞춘다. 오직 미역이 보글보글 끓어 뽀얗고 푸르게 몸을 풀 그 때까지 인내하며 지켜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내가 살아 온 어린시절의 역경들이 내 속에 스며들어 나를 성숙시킨 것처럼 나 자신의 영혼을 녹이는 간절함으로 나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 보는  행위를 닮기도 하였다.
나는 미역을 통해 진실한 사랑을 배워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소망한다. 나도 미역처럼 내 몸을 풀어 뽀얗고 고소하게  맛을 내어 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