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네팔리들의 상처를 안타까워하며 강진 곰파로

[기획연재]'세계의 지붕' 네팔 히말라야 랑탕국립공원을 가다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7.03.10 11:44
  • 수정 2017.03.11 10:08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랑탕마을의 숙소에서 올려다 본 랑탕리룽의 아침. 설산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다.


셋째날. 오늘은 이번 트레킹의 목적지인 강진 곰파까지는 3~4시간 정도 걷는 비교적 쉬운 일정이다. 이른 아침 방에서 마당으로 나와 건너편 설산을 올려다본다. 어둠을 밀어내고 있는 여명에 하얀 설산은 점차 황금빛으로 물들어간다. 그 아래로는 땅위를 휩쓸고 간 토석이 무심한 듯 널브러져 있다.

지진 후 눈사태로 토석이 휩쓸고 내려온 암벽의 흔적들. 바위 아래 집은 용케도 살아남았다.


대원들이 하룻밤 묵었던 롯지의 주인인 28세의 젊은 아줌마는 애끊는 사연을 품에 안고 있었다. 지진 때 학교 문제로 한 아이를 다른 마을에 데리고 가있어 용케도 참사를 피했는데, 남편과 다른 아이는 집에 머물고 있다가 눈사태로 희생됐다고 한다. 지진 이후 트레킹족들을 상대로 롯지를 오빠의 도움으로 운영하며 근근히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고 했다.

 

지진으로 남편과 아이를 잃고 룻지를 운영하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는 젊은 아낙


그녀의 눈빛은 슬픔을 억누르고 현실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을 수 밖에 없는 기구한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살아남은 자들이 언제까지 죽은 자를 그리며 슬픔에 젖어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모질고도 모진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니던가. 이곳 네팔리들은 그저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기에 슬픔을 애써 억누르고 초연하게 살아 갈 뿐이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목적지인 강진 곰파를 향해 트레킹을 하고 있는 대원들


대원들은 슬픔의 눈물을 감추고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무심한 체 있는 랑탕 마을을 출발하여 강진 곰파로 향한다. 가는 길목의 곳곳에는 아직도 참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가던 발길을 멈추고 자꾸만 뒤를 돌아다보는 나그네의 발걸음을 가볍지만은 않다. 대원들 중 몇몇은 점차 발걸음이 무뎌지고 있다. 서서히 고산증세가 머리를 짓누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변의 산허리를 둘러봐도 지금까지와는 달리 키가 큰 교목들은 보이질 않는다. 이미 나무가 자랄 수 없는 수목생장한계선을 넘어선 것 같다.

대원들의 카고백을 말에 싣고 앞서가는 포터들


대원들의 카고백을 실은 말들은 포터들을 따라 대원들을 앞질러 간다. 출발한지 40분이 지날 무렵 문두(MUNDU 3,550m)를 지났다. 한참을 걷다 할아버지와 함께 가고 있는 어린 아이를 만났다. 산중에서 어린 아이를 만난 대원들은 베낭에 들어있던 위문품 중 풍선을 불어주고 과자를 아이의 고사리 손에 쥐어준다. 아이는 낮선 듯 처음에는 망설이더니 이내 얼굴에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는다. 세월의 풍파를 깊게 패인 깊은 주름의 깊은 골에 담고 있는 칠순 할배는 지진으로 엄마와 영원히 이별했지만 영문을 모르는 어린 손자를 데리고 강진 곰파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올라가는 길이라고 했다.

부모를 잃은 철부지 아이를 데리고 가는 주름진 할배를 만나 베낭 속의 과자와 풍선을 건네주다.


경사가 비교적 완만하고 주변의 조망이 훤하게 트인 랑탕 계곡을 1949년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밟은 사람은 영국의 탐험가 틸만(H. W. Tilman)이다. 틸만은 ‘꽃의 계곡’, ‘천상의 계곡’으로 명명하고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짜기라면서 감탄했다고 한다. 히말라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으로 손꼽히는 랑탕 계곡은 네팔의 국화인 릴리구라스의 최대 군락지로 3~4월이면 온 산을 물들이는 꽃들의 잔치가 벌어져서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하는 멋진 풍광으로 알려져 있다. 명성에 걸맞게 길가 곳곳에는 꽃이 피었다 진 흔적들이 남아있어 화려하게 꽃단장을 했을 지난 여름을 떠올리게 한다.

목적지인 감진 곰파가 가까워지자 아름다운 설산들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선다.


고도를 높일수록 경치는 절로 탄성이 나오게 만든다. 한참을 올라가니 티벳 불교의 상징인 백탑이 나오고, 길이 두 갈래로 갈린다. 대원들은 오른쪽 길을 따라 올라간다. 한참을 걸어 올라가니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오는 얕으막한 언덕에 올라섰다. 랑탕 마을을 출발한지 3시간 30분 만에 오늘의 목적지인 강진 곰파에 도착했다. 세르파가 세 시간 정도를 예상한다고 했었는데, 얼추 비슷한 시간이 소요됐다.

강진 곰파로 가는 길에 계곡을 가로질러 놓인 다리 위에서 단체로 기념사진을...


고개를 넘어오면서 바라 본 마을의 겉모습은 평화로운 시골마을로 보였다. 마을이 새롭게 만든 것처럼 깨끗하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지진 구호 물품으로 새롭게 집들을 짓고 수리했다고 한다. 반면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난민촌은 전기와 수도도 없는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 근근이 목숨만 연명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숨길 수가 없게 했다.

(계속)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