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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같이 사랑해서 바보처럼 그리워했다

[에세이-詩를 말하다]김인석 / 시인. 완도출신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7.05.12 16:22
  • 수정 2017.05.1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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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마음이 바람에 밀려올까, 격자무늬 쪽문 열어놓고 초침 보며 기다렸지만 바보였지요 기다려도 아니올 줄 허다하게 알면서도 또 하늘 같은 바보짓을 했나봅니다 실안개 묻은 내 마음은 사락눈이 되어, 산모(産母)의 고통 같은 통증으로, 설산(雪山)을 불러 설산(雪山)에다 집을 짓고, 쪽문 열어 기다렸지요 해시계 보며 눈이 부시게 기다렸지요 오지 않을 그대인 줄 알면서도 백색 천으로 둘러쳐진 아름다운 이 산야(山野)에다, 그 이름자를 풍덩풍덩 새겨봅니다 내가 바보였지요 어쩌다가 비 맞는 능소화가 되었는지 금봉에게 그림으로 그려주며 물어보고, 이름을 잃어버린 화가에게 다가가서 여쭤도 보고, 여승을 불러내어 나의 비밀을 던져주면, 여승은 알 듯 모를 듯 선사 같은 몇 마디, 다시 나에게 던져주며 그대에게 물어보라 합니다
      
                                                                                       -김인석, <바보> 부분
 

김인석 / 시인. 완도 출신

위의 작품에서 화자는 누군가를 무척이나 사랑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꼭 시인과 시적 자아가 일치한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일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위의 작품에서 "격자무늬가 있는 쪽문"이라는 것은 저 깊은 구성리 골짜기의 흙담집에서나 볼 수 있는 아주 작은 집이 아닐까.
아마 그 집은 빗방울 소리가 들리고, 바람 부는 소리가 있고 쓸쓸함이 묻어 있는 곳이겠지요. 그곳에서 한 사람을 향한 시를 쓰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오지 않을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그 작은 쪽문을 살짝 열어놓고, 기다리는 모습은 참으로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시적 자아는 왜 내가 비 맞는 능소화가 되었는지, 금봉에게 그림으로 그려주며 물어보고, 이름 잃은 화가에게 물어보고 여승을 불러내어 해답을 찾아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그대에게 물어보라는 것이지요. 이 기막힌 역설을 통해 해일 같은 그리움은 참으로 말로는 형언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가진 것은 없지만 한번도 누구에게도 굽힘 없이 살아왔다는 시적 자아의 생각의 발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지독스러울 정도로 한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한 사람 앞에서는 왜 이렇게 초라해지는지 무척 슬퍼하지만, 슬픈 만큼 사랑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도 생각되어지네요.
한용운 시인의 <복종>에서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에서처럼 너무 사랑함으로 인해 스스로가 초라해진다는 생각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승의 입을 통해서 그대에게 물어보라는 말에, 금방 사라질 송이눈 같은 사연을 품고 달려갔지만 "그리움의 백색 무늬가 파도를 이룬 외길 안에서 온기 묻은 손을 얹어 꼭 잡아줄 뿐" 이라고 독백처럼 말하고 있는데 서정적 자아는 꼬옥 안아주기를 원했는지 아니면 키스라도 해주기를 원했는지 그것은 알 수 없지만 "손만 꼭 잡아줄 뿐" 이라는 말에 많은 아쉬움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아마 눈이 펑펑 내린 뒤에 설산이라는 곳을 갔다는 생각이 듭니다.
백색무늬라는 표현은 눈을 가리킨 듯하고 파도를 이룬다는 의미는 바람으로 인해 다랑이논처럼 층으로 이루어진 눈계단을 의미하지 않나 생각이 들며 또한 산사의 길들은 대부분 외길로 되어 있을 듯합니다.
그런 그곳에서 평균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걷는데 시적 자아의 절절한 통증은 굳어 화석이 되어간다고 말합니다. 얼마나 사랑을 하면 절절한 통증이 화석이 되어간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누액(淚液)의 얼룩이 묻은 한 필 한 필이 말라, 오늘 이 설산(雪山)을 이루었을까요"라고 하는 이 구절이 그리움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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