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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설움 속 은근과 끈질김으로

[완도의 자생 식물] 9. 물봉선화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7.08.11 17:31
  • 수정 2017.08.1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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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봉선화


초록 위에 초록도 꽃이 될 때가 있다. 갓 새싹이 자라 초록의 꿈들을 펼칠 때 그 마음이 초록 비단이 된다. 가장 가난한 장독대 옆에서도 초록은 그대로의 꽃이다. 녹두꽃 저고리 옆에서 하얀 햇살을 품은 초록은 마당 한가운데서 씨를 익힌다.

빨아간 치마에 녹두꽃 저고리는 참으로 가난하면서 가장 찬란한 풍경. 한 생애의 비애와 애한이 서려 있다. 초록의 물결 위에 갑자기 찾아온 빨간 꽃잎은 슬픔과 설움을 한 묶음 풀어 놓는다. 가장 깨끗한 햇빛과 가장 순한 물이 만나는 날에 꽃이 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그런 꽃잎은 꽃이 아니다. 녹이 슨 철 대문 안에 쓸쓸하게 핀 봉선화. 그 자리에 녹두 콩이 은실의 햇살로 입히고 있어야 하는데 녹두꽃 엄마는 보이지 않는다. 흐르는 세월이 야속하다. 산기슭에 빨아간 물결이 흐르는 것 같다. 물만 먹고 산 물봉선화다. 한가한 개울에서 꽃이 필 땐 너도나도 열성적으로 핀다. 이들이 있는 개울은 조용할 수밖에 없다.

함께 모여 있고 잔뿌리가 많다. 물에 속도를 늦출뿐더러 정화작용도 한다. 미나리, 고마리, 물봉선화 등은 흐르는 물을 맑게 정화시킨다. 자연은 풍요로울수록 땅이 건강해진다. 나무는 공기를 야생화는 물을 맑게 한다. 이렇게 야생초의 종류가 많아질수록 땅이 산다.

또한 약물과 염료로 쓰인 이 야생화는 천연물감을 들인다고 한다. 물봉선화는 봉선화과이다. 비슷한 꽃은 하얀 꽃과 흑자색 꽃이 있다. 산에 사는 나리꽃과 같이 꽃잎에 자주색 반점도 있다. 씨를 땅에 터트릴 때도 갑자기 터트려 멀리 가게 해 자기 영역을 넓히는 것이다. 엄마의 땅에서는 봉선화 물을 들인다. 오막살이의 아주 작은 마당에서 분홍색 물감은 가장 가난한 색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난 뒤에는 마음에 새기는 물감이 되고 말았다. 자식들이 먹고 입히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어려움도 이겨 나가기 위해서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서정을 키웠다. 야생화를 사랑하는 엄마는 어떤 엄마일까요. 우리 어머니들에게 받은 유전인자를 받았을 것이다.

슬픔과 설움 속에서도 유연하고 부드럽게 대처하는 지혜. 은근과 끈질김이다. 마당에 초록이 꽃으로 보이는 데에는 그 부드러움이 한 잎 한 잎 더해져 있기 때문이다. 물봉숭아로 옷에 물감을 들이고 싶다. 저고리는 초록색이고 치마는 빨간색이다. 이 꽃 하나를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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