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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에세이-詩를 말하다]김인석 / 시인. 완도 약산 넙고리 출신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7.08.12 10:11
  • 수정 2017.08.1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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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석 / 시인. 약산 넙고리 출신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가슴에 금이 갔다/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산 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금방 따낸 돌 온기(溫氣)에 입을 닦는다
      
                                                                               -김광섭, <성북동 비둘기> 부분

살아온 만큼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세상도 많이 변했다. 어릴 적 고향에서 나는 겨울이면 자그마한 언덕배기 눈밭에서 친구들과 판자때기로 썰매를 만들어 미끄럼을 타기도 했다.

여름이면 수박밭에서 친구들과 수박 서리도 했다, 밤이 되면 누구네 집에서 팥죽을 쓰는지 이 집 저 집 탐문해서 알아내고, 깊은 밤이 되면 우리는 장독대에 올려놓은 팥죽을 가져다 놓고, 바닷가 바위에서 또는 허스름한 작은 골방에서 별별 이야기를 다해가면서 낄낄거리며 유머의 우격다짐도 했다.

한 숟가락을 더 먹기 위해 싸우기도 하며 팥죽을 먹었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늦가을이면 바지게와 낫을 가지고 가서 산등성이에서 마구 벤 마른 잡초들을 친구들이랑 한데 모아 놓고 이긴 자가 다 가져가는 낫치기도 하고, 낫치기로 딴 잡초들을 지고 와서 저녁밥을 짓기도 했다.

아름다운 추억이며 그때 그 시절이 아련하다.
세월, 세월은 흘러 소년에서 청년으로 변해가는 우리들을 학교 또는 생계를 위해 도회지로 밀어내고 말았다.
그리고 어느덧 고향이 타향이 되고 타향이 고향이 된 곳에서는 산을 깎아 새롭고 아담한 집들과 대형 아파트들이 생기면서 새 번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가슴에 금이 갔다”. 그랬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꼭 그랬다.
산 번지가 하나 둘 사라지고 집 번지가 생기면서 산제비, 산비둘기 내 지인이 가르쳐준 마삭나무, 노각나무 번지가 없어졌다. 온종일 돌 깨는 소리, 기계음 소리가 자연의 소리인 새소리, 대숲소리, 소나무 흔들리는 소리를 마음대로 몰아내고, 자동차 울음소리 같은 것들의 온갖 슬픈 정서만이 마음에 인화되어 아직도 아프게 서려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성북동 비둘기> 이전의 그때가 그토록 그리워지는 것은 아마 참 이웃이 있었고, 진정한 사랑이 있었고, 진정한 기다림 같은 것이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이익에 따라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한다. 이성적인 사회도 아니면서 이성적인 사회인 것처럼 많은 사람들은 사고하고 행동하려 한다. 너무 이성적인 사회는 감정이 메마르고 오직 합리적인 판단만이 옳다고 우겨대는 것은 마른 장마철이나 다름없다.

어쩌면 현재보다 못한 사회적 현상을 부를 수도 있다. 조금 틀려도, 조금 비합리적일지라도 조금 모자랄지라도 조금 부족하더라도 아름다운 정서가 살아 있는 세상이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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