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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의 정취는 마른 국화꽃 향기

[완도의 자생 식물] 15. 산국화 / 구절초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7.09.18 10:24
  • 수정 2017.09.18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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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는 꽃이 핀다. 주인 없이 산에는 꽃이 핀다. 하늘과 골짜기 물만이 있으면 꽃이 핀다. 누구에게 자랑도 하지 않는다. 자기의 도량대로 핀다. 어쩌다 산길에서 보이는 꽃은 수줍다고 얼굴을 붉힌다. 산에서 수행하는 자를 보고 세상이 싫어서 산으로 들어간 줄 안다. 그러나 세상을 바로 알기 위해서다. 침묵과 상상력이 풍부하게 늘어서 있는 산등성은 무한한 세계다. 그 세계는 복잡함이 없다. 고요함과 맑은 상상력이 산과 산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산에선 홀로 자기를 온전히 채울 수 있다.

산등성에서 바싹 마른 꽃잎은 본래의 모습 그대로 계절을 내어 준다. 특히 늦가을의 정취는 마른 국화꽃 향기다. 꽃이 한창 필 때는 그 자리에만 향기일 뿐이다. 그러나 마른 국화향기는 산 전체에서 나오는 듯하다. 산국화는 구절초다. 음력 9월 9일에 꽃잎을 따서 말려야 약효가 제일 좋다고 구구절 꽃, 구절초라고 부른다.

이 야생화는 민간인과 가까운 사이다. 산에만 가면 쉽게 구할 수 있었고 민간요법으로 소중하게 쓰였다. 대표적론 혈을 덥힌다 하여 부인들에게 많이 쓰였다고 한다. 지금은 보기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다른 잡목나무에 가려져 햇빛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골에 살아본 오십 대 이상인 사람들은 ‘철나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여름철에 이파리가 무성할 때 잡목나무를 베어 겨울에 땔감으로 썼다. 그래서 그때는 키 작은 야생화들이 살아남았다. 산국화가 필 땐 가을의 정점이다. 옛생각도 새롭다.

가을 소풍 가는 길에 산국화가 듬성듬성 피었다. 멀리 산등성에는 하얗게 둘러쌓였다. 산국화를 캐러 어머니 뒤를 따른 적이 있었다. 자세하게 꽃잎을 기억하게 하는 것은 어머니가 산국화라고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이 가르쳐 주었으면 잃어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꽃보다 마음이 먼저 피어 꽃을 보게 된다는 사실이 무릇 좀 살아보니 알게 된다. 산은 모든 것을 수용한다.

산에서 만난 그 어떤 만남도 향기로울 수밖에 없다. 낯선 야생화도 금방 친해진다. 그저 내어줄 뿐 달라고 하지 않는다. 산에다 금을 그어 자기 것이라고 마구 파헤치거나 훼손하는 일이 많다. 이것은 정신과 마음을 황페화하는 것과 별 다를 바 없다. ‘산’이라는 글을 써봐도 기분이 좋다. 그 속에 산국화가 피어 향기를 내품는다. 이때 산과 내가 하나 되는 느낌이 든다. 마른 산국화 옆에서 멀리 있는 산등성을 보면 가을 서각에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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