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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은 詩월이야

[가을특집]가을, 완도 그리고...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7.11.06 10:17
  • 수정 2017.11.06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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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없는 세상을 살아보려 해
너무 아파서 건드릴 수 없었던 세상
차가운 기온을 온몸으로 받으며 견디는 시월
그 몸이 점점 붉어지고 있어
살아낼 수 없던 생을 뒤로 남겨둔 채
의문을 다 풀지 못하고 떨어지는 잎새
떠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죽음의 빛이 그리 아름다울 수 있을까
더 알기도 전에 거둬들이는 겸손
한 사람에게 한 사람이 다한 사랑
색색의 옷들을 벗기며 새겨 넣는
한 줄의 선명한 당신이라는 나이테
그러면서 말하지
그것이 최선의 생이라고
그것만이 자신이 이생에서 겪는
무한의 시간이라고.

시월, 詩월이야 / 우현자
 


가을은 고독의 계절. 가을은 우리를 때때로 끝도 없이 고독하게 한다. 그렇다면 고독이라는 시간은 그냥 오는 것일까? 가을의 고독은 한없이 여린 씨앗하나를 온기로 품고 품었다가 그 씨앗을 가장 아름다운 날 순간의 꽃을 피운 후에 온다.

그 꽃은 뜨겁게 작열하던 태양빛을 이겨내고, 폭풍같은 비바람도 이겨내고 그래서 그 절정의 시간을 끌어 올려 그 소임을 다하고 난 후, 자신의 열정의 시간을 다 바친 다음 후에 절대 침묵의 고요를 우리에게 선물한다. 그것이 가을의 고독이다.

나는 그러한 가을이 주는 고독 같은 선물이 심장을 치고 들어올 때 릴케의 편지 속으로 들어간다. 때때로 마음이 메마르고 건조해져 글을 쓰기가 어렵다고 느껴질 때, 글을 써야 되는 이유를 다시 찾고 싶을 때, 나는 릴케의 시어들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다. 릴케의 어느 시인이 되고자하는 젊은이에게 쓴 열편의 편지는 다시 글에 대한 내면의 욕망을 불러일으켜 주기에 충분하다.
 


릴케의 편지는  자신에게 주어진 생의 절대적 고독을 겪어 낸 자의 뜨거운 생의 시간을 말해준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서는 고독이라는 단어가 계속적으로 이어진다. 그는 시인이 되고자 하는 젊은 시인에게 끊임없이 고독하라고 말한다. ‘당신의 고독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그 고독이 아름다운 탄식의 소리를 자아내며 당신에게 맛보여준 고통을 짊어지십시오, 진지한 것은 대부분 고통스럽다’고 젊은 시인에게 진지하게 조언한다. 그는 우리 모두가 고독한 존재라고 하며 계속 내면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그것이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이고, 그 이유가 가장 깊은 내면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를 계속해서 묻는다. 그는 그 질문 속에서 글을 쓰는 이유를 찾으라고 말한다. ‘나는 꼭 글을 써야 되는가?’그 이유를 내부로 파고 들으라고 말하며 ‘나는 반드시 글을 써야만 한다.’고 대답할 수 있을 때 이 필연성에 따라 삶을 만들어가라고 한다.

릴케는 <고독>을 또 이렇게  노래한다.
'고독은 비와 같다. 고독은 바다에서 저녁으로 오른다. 고독은 아득히 먼 외딴 평원에서 언제나 고독을 품고 있는 하늘로 향한다. 그러다 하늘에서 도시로 떨어진다.' 평생 고독의 생을 살다간 릴케의 고독이다.

림태주 시인은 <그 토록 붉은 사랑>에서 ‘내 몸이 한갓 외로움과 그리움에 신음할 때 그는 내게 침묵을 다루는 법을 알려 주었다. 나는 흉곽을 열어 고요의 뼈를 이식했다. 적막하게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면서 시인은 붙잡지 않는 것, 애착을 놓는 것, 놓아 보내 버리는 것, 나를 다녀간 그 사랑이 온전하게 그의 자리로 돌아가 제 몫의 삶을 사는 것, 그리하여 잊혀 질 때까지 내 가슴 안에 생존하는 것, 통증은 그리 느리게 소멸 한다고 말해준다. 그는 시를 쓰는 것을 붉은 사명이라 말하며 함부로 살지 않으려고 시를 쓴다고 한다.

모든 국민을 시인으로 만들고 싶어 했던 파블루 네루다가 나오는 시 같은 책인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가 있다. 이 안에는 이제 사랑에 빠진 마리오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시를 쓰려하는 마리오는 이런 말을 한다.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라고, 그래서 음미하며 입안에서 사르르 녹게 해야 한다고.’

이 가을은 정말로 우리들의 생에게 주는 선물이다. 시를 쓰는 자에게도 그 시를 읽는 자에게도 고독을 주고, 침묵을 주고, 한 때의 열망했던 그리움을 준다. 점점 마음이 메마른가? 이 가을에 시를 읽고 시를 쓰는 건 어떠한가? 가을이 주는 선물 같은 날들 속에서 우리 모두 시인이 된  보는 건 어떠한가?
 

우현자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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