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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생 풍경 부드러움

[완도의 자생 식물] 23. 노박덩굴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7.11.17 15:44
  • 수정 2017.11.1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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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은 느림의 미학이다. 그냥 시간이 멈춰있는 듯 시계는 한 곳에 집중되어 있다. 아름다움이란 내일이 아니다. 순간순간 눈 마주침이다. 늦가을은 단순하면서도 풍요로운 마음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산감이 주홍색을 띠고 있다. 바로 앞에서는 마른 꽃처럼 달린 노박덩굴 열매가 가을을 장식하고 있다. 느린 걸음 옆에 주홍색으로 변한 꽈리 열매도 볼만하다. 해가 점점 남쪽으로 치우쳐 주홍색을 띠는 열매들이 가을빛을 통과시키고 있다.

느린 가을 햇빛이 창호지를 통과해 내 마음마저 비쳐오면 차분해진다. 늦가을에는 돌아가야 보인다. 바른 선으로 가면 보이지 않는 것이 많다. 구불구불한 오솔길에서 모든 사물을 볼 수 있는 데에는 다양한 시각이다. 순간순간 멈춰있다 다시 느린 걸음은 모든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다. 늦가을은 주홍색에 집중한다.

여기에는 멈춤, 집중, 느림, 간소한 마음이다. 이른 봄에는 쪼그려 앉아야 야생화가 보인다. 늦가을에는 멈춰있기만 하면 된다. 약간 녹색을 띠고 있는 노박덩굴의 꽃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열매는 꽃처럼 생겨 쉽게 만날 수 있다. 노박덩굴은 다년생 덩굴로 가을에 낙엽 지는 나무로 높지 않은 산언덕에서 자란다. 노박덩굴은 특색 있는 열매로 과산등이란 이름도 있지만 남사등이라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약효는 근육과 뼈를 튼튼하게 하고 손과 발의 마비를 풀며 통증을 멎게 하고 염증을 없애고 소변을 잘 나오게 하며 몸 안에 있는 독을 풀어준다고 한다. 이 야생화는 분명 나무다. 그런데 열매는 풀과의 열매처럼 생겼다.

수많은 열매는 순간순간 이어져 있는 것 같다. 느린 걸음은 결코 느림이 아니다. 순간순간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 오늘 하루를 멋지게 사는 방법은 느린 걸음으로 가다가 멈춰 노박덩굴을 보는 데에 있다. 주홍색은 홍시를 생각나게 한다. 마당 한 곳에 감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맘때면 가지 휘어지게 달려 있다. 어머니는 이처럼 불을 켜놓고 자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늦가을 주홍색 풍경은 부드러움이다.

부드러움은 생명에 대한 여유로움이다. 성급한 결론보다 더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을 천천히 묵상한다. 늦가을 먼 풍경과 가까운 풍경 그리고 내 바로 앞 풍경을 집중 조명해 본다. 느린 가을 햇빛과 주홍색이 오감을 작동케 한다. 온 몸을 느끼게 하는 주홍색 가을이 천천히 떠나보내기 위해서는 순간순간을 집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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