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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탱해주는 작은 열매

[완도의 자생 식물] 25. 댕댕이 덩굴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7.12.01 10:41
  • 수정 2017.12.0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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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산 숲에는 작은 우주가 생겨난다. 빨갛게 마지막 여운을 달아놓은 산가막살 열매, 나지막하게 부엉이 소리에 묻어 있는 노린재나무의 검은 열매, 5월의 향기를 모두 모아 놓은 찔레꽃 열매, 마지막 한 해를 보내기 아쉬운 듯 올가을의 서정을 고스란히 담아둔 빨간 명감나무 열매, 절반은 노랗고 그 나머지는 바래버린 낙엽에서 우수에 잠겨있는 댕댕이덩굴 열매는 점점 넓어지는 겨울 공간에 아스라이 아늑한 마음을 채워가고 있다. 봄여름에 보이는 것들은 허공으로 돌아가고 지금까지 비워두었던 것들은 마른 나뭇가지에 작은 우주처럼 생겨나고 있다.

실재만 갈망하는 이들은 가끔은 허허로울 빈 공간으로 돌아가 작은 우주를 볼 일이다. 가장 가난하게 달아둔 댕댕이덩굴 검은 열매는 찬바람이 지나가는 자국에서도 맑은 정신이 있다. 5월은 풀빛과 같은 정(情)을 풀어놓았다. 7월은 청록의 열매 속에 실(實)을 달아두었다. 11월은 허공 속에 작은 정신을 담아 넣었다.

이제 숲은 어디론가 떠나고 빈자리에 별빛을 바라보듯 작은 마음을 볼 일밖에 없다고 검은 댕댕이덩굴 열매가 말하고 있다. 댕댕이덩굴은 우리나라가 원산지이며 6월에 조그마하게 귀엽게 핀다. 약간 떨어져서 보면 연초록 꽃처럼 피어있다. 8월에 청록의 열매가 11월 검푸른 열매로 변한다. 줄기는 3미터가 넘는다. 어릴 때 줄기는 연초록색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회색으로 변한다. 줄기는 가늘지만 끈기가 있기에 옛날에는 바구니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였다. 열매가 녹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화되고 그 모습이 당당하다.

다른 나무에 기대에 산다는 것은 어지간히 은근과 끈기가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서 댕댕한 덩굴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아무리 힘센 사람과 동물도 이 덩굴에 넘어진다는 옛말은 비록 보잘것없는 연약한 줄기라고 깔보지 말라는 뜻도 있다. 약효는 진통억제 성분이 있어 해열, 이뇨, 근육통, 신경통, 통풍, 소변불리증 등에 쓰인다고 한다. 11월은 허와 실을 넘나들이의 계절이다. 그동안 보였던 것들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조용히 나타나고 있다. 계절은 이렇게 새로운 마음을 꺼내게 한다. 11월에 마지막 매달려 있는 작은 열매를 보면서 내 안에 있는 것 중에 가장 소중함을 꺼내어 본다. 그것은 바로 나를 지탱해주는 새로움의 발견이다. 오늘도 내 안에서 창조하는 노력이 없다면 하루가 무의미하다. 실제 보이는 세계보다 더 보이지 않은 그 사람의 정체가 본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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