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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과 그리운 벗

무릉다원, 은선동의 茶 文化 산책 - 2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02.13 16:47
  • 수정 2018.02.1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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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 / 완도차밭 청해진다원

춥고 으슬으슬한 날이면 따끈한 차 한 잔이 그리운 법이다. 싱그럽고 향기로운 녹차 한 잔을 혹한의 겨울인 요즘과 같은 시기엔 기대하기 어렵지만, 홍차나 발효차를 마시기에는 좋은 계절이다. 취향에 따라 다른 차나 과일즙 등을 소량 섞어 마시면 그 나름의 묘미가 있다. 굳이 차가 아니어도 생강이나 모과, 혹은 유자를 재어 만든 대용차 등도 좋다. 그러나 한두 잔이 아닌 여러 잔을 오래도록 많이 마실 수 있는 것은 역시 차만한 기호음료도 없다. 게다가 멋지고 아름다운 가까운 지인이 함께한다면 더없이 좋겠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좋을 마음 편한 벗이면 얼마나 좋을까! 한적한 오솔길을 나란히 걷는 것처럼 우리네 삶의 뒤란을 서로 마주 앉아 돌아볼 수 있는 한 잔의 차가 그립다. 그런 벗이 그리운 것일 게다.

텅 빈 고요한 차실에 홀로 앉아 손에 익은 다구를 만지작거리며 올려놓은 찻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모든 망념을 쉬고 오직 찻물소리에만 귀 기울이는 마음! 문득 옛 선인들의 글이 떠오른다.

“고래성현구애다 다여군자성무사(古來聖賢俱愛茶 茶如君子性無邪)”
“예로부터 성현들이 차를 즐겨 마셨던 것은, 차가 군자의 성품과 같아서 삿된 기운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며,

“정좌처다반향초 묘용시수류화개(靜坐處茶半香初 妙用時水流花開)”
“고요히 앉아 차를 반쯤 마셨는데 한창 익어 피어나는 차향은 처음과 같고, 신묘하고 오롯한 찻자리는 마치 물 흐르고 꽃이 피듯 하여라!”라고 하였다.

위 구절은 우리나라 차의 중흥조이자 차의 성인(茶聖)으로 추앙받고 있는 조선시대 초의선사께서, 아래 구절은 추사 김정희선생의 글로써 많은 해석들이 있지만, 평소 나름의 차생활을 바탕하여 의역해 보았다.

이 글들은 삿됨이 없는 차의 아름다운 성품에 대한 칭송과 찻자리가 갖는 정신적 묘경을 잘 나타낸 선구(禪句)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정신적 경지를 서로 나누었던 이분들은 같은 나이로 스님이자 유학자로서 당대 최고의 석학들이었다. 차인으로서 각별한 격외의 교류가 고금의 선례로 남아 부럽기 그지없다. 추사가 제주도로 유배되어 위리안치(가시 울타리로 가둠) 되었을 때 정성스레 만든 차를 보내 그 울분과 시름을 달래준 초의선사의 아름다운 마음이 그리운 것이다. 뿐이랴! 차를 구걸하는 내용의 걸명소로 유명한 다산과 아암의 차를 나눈 정은 또 어디서 찾을까?

그런 벗이 그립다. 차밭 입구 모퉁이를 돌아서 올 그리운 벗의 그림자가 때론 그립다. 고산의 수석(水石)과 송죽(松竹), 그리고 달을 벗삼아 찬한 오우가(五友歌)도 문득 떠오른다. 그러나, 아름다운 영혼들의 만남을 어찌 수석과 송죽에 견주리요. 다만, 춥고 삭막한 혹한의 겨울 모습이 마치 오늘날 우리네 세상의 단면처럼 다가오는 듯하여 따끈한 차 한 잔을 우린다. 한 잔의 차가 어찌 세상 가득 따스하게 할 수 있을까만, 이 한 잔이 모두의 한 잔으로 모인다면 분명, 세상은 아름답고 훈훈함으로 가득한 따스한 세상이지 않을까 싶다. 차 한 잔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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