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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물견은 처절하지만 좌절 않는 민중의 함성

[완도의 자생 식물] 49. 삐비꽃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8.06.01 10:41
  • 수정 2018.06.0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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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핀 5월의 들녘에선 가느다란 바람에도 크게 움직이는 몸짓. 그대들의 몸짓은 바람이 보이는 언덕이다. 본디 본성은 착하고 순하다. 가장 순수한 얼굴에서 너의 부드러운 숨결을 듣는다.

한 번의 눈길에도 너의 마음을 훔쳐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이냐. 불순한 세력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야합에서 부딪치지 않는다. 그것은 함께 손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과 마음이 부드럽게 잡고 춤추는 세상이 이렇다. 그래서 삐비꽃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얼마나 더 갔을까. 순간 꽃이 핀다는 걸. 머나먼 미래에서 꿈꾸지 않는다.

바로 내 앞에서만 꿈꾸는 순간순간이다. 순간의 아픔도 꿈이다. 순간의 서러움도 꿈이다. 미래는 결코 소망이 아니다. 발등 위에 꽃잎 하나 떨어져 있음을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있는 운명이다. 비바람에 젖지 않는다. 며칠 있으면 삐비꽃도 지기 때문이다.

너무 슬픈 사연 때문일 것일까. 길이 있는 곳이라면 그대들의 하얀 얼굴들이다. 하마터면 눈물 보일까 하여 하염없이 흔들어 댄다. 내가 가는 길 위에 한 발자국도 뒤돌아보지 않는 목멤. 바람 한 줌에서 서로 움켜잡은 서러움. 5월의 들판은 조용함이다. 그 정적함을 삐비꽃에서 알 수 있다. 멀리 뻐꾸기 울음소리도 견주지 못할 만큼 조용하다. 5월의 역사를 모두 함축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말이 없다. 그대가 가는 길에서, 내가 가는 길에서 모두가 하나인 양 가고 있다. 삐비꽃은 역설적이다. 함께 춤춰도 서럽게 춘다는 것이다. 일제히 움직이지 않아도 그대로 눈물뿐이다. 가난한 시절에 껌 대용으로 갓 배동하는 삐비를 씹었다. 논물에서 거머리에 물리면 이 꽃을 붙여 지혈했었다. 6월은 하얀 꽃들이 많이 핀다. 하얀 찔레꽃과 개망초가 그렇다.

서로서로 함께 가야 한다는 5월은 눈물의 끝과 환희 끝이 함께 맞물려 있는 듯하다. 그래서 역설의 계절이라 생각된다. 들녘에 핀 삐비꽃. 하얀 물결은 민중의 함성인 듯하다. 움켜잡은 가슴이 처절했을지언정 절대 좌절하지 않는다. 다시 일어서고 또 서서 5월의 역사를 만들었다. 강물은 스스로 흐름을 모른다.

강둑에 삐비꽃이 흔들어야 강물은 비로소 흘러간다. 바람은 은빛으로 채우고 마음마저 고요하게 채운다. 친절한 길벗이여! 부드러운 눈빛으로 나의 길을 물어본다. 그 몸짓에서 깨끗함을 본다. 맑은 하늘과 고요함과 온유함이 가장 순결한 춤이 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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