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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고 역사동아리 '장/보/고'의 5.18 추모법

[5.18 특집] 이유빈 / 청소년 기자(완도고 역사동아리 '장/보/고' 회장)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06.09 20:57
  • 수정 2018.06.09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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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38년 전, 5월 광주. 5•18광주민주화운동은 유신정권의 박정희 전대통령의 죽음으로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가 군사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또다시 군부 정권을 차지하려고 하자,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민주화를 외치며 일어났다.

계엄령이 내려지고 계엄군과 맞선 광주는 폐허로 변해갔고, 급기야는 계엄군이 전남도청 앞에 모인 시민들에게 집단발포를 하여 많은 사람들이 희생이 돼 이에 시민들은 파출소, 경찰서, 예비군무기고 등에서 무기를 가져오게 되고 이로써 ‘시민군’이 등장하게 되었다. 시민군은 최후의 항전을 다지면서 5월 27일 새벽까지 계엄령과 싸우면서 모든 항쟁이 끝나게 되었다.

10여일에 걸친 5•18민주화운동.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광주 시민들은 민주화를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바쳤다. 설령 그것이 목숨이라 할지라도...

5·18운동이 지속될 수 있을 수 있던 이유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희생과 적극적인 참여 때문이었다.  초등학생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헌혈에 동참하고, 시신을 입관할 관이 부족하여 청소년들은 화순으로 관을 구하러 가고, 거리청소, 시민군 활동에 보조역할, 모금활동, 선전활동, 양동시장의 할머니들의 밥 짓기 활동 등 시민군들을 위하여 광주가 하나가되어 참여했다.

올바른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을 갖춘 완도고등학교의 대표 역사동아리 '장보고‘는 민주화 정신에 근간인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기르고 38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보아라 불어라 5월의 진실 평화의 바람'을 큰 주제로 삼아 16일부터 25일까지 평화를 지키기 위한 광주 시민들의 아름다운 저항을 기억하고자 완도고등학교 2층 커뮤니티 홀에서 5•18 민주화운동 사진 전시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장보고’회원들은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으로부터 5·18 희생자분들이 왜 하필 그들이었는지? 어떻게 계엄군들은 같은 나라의 사람으로서 이런 짓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고, 우리는 그날의 아픔들을 완전히 느낄 수는 없지만 모두들 그날이 잊을 수 없고 슬픈 기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우리나라가 이런 많은 고난들이 있어서 지금의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

민주화 운동이 38년이나 지난 아직도 진상규명과 가해자 목록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명확히 책임자를 처벌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광주의 시민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한다. 광주시민들이 없었다면, 지금 그렇게 사이트에서 자신의 입장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함께 행사를 준비했던 부수정 학생은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자료들을 직접만들고  기사까지 써보게되니 눈으로 보는것 보다 훨씬 생생하였고 5.18민주화운동은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정재민 학생은 "5.18 기념발표 및 사진들을 직접 전시하고 감상해보니, 우리가 지금 맛보고있는 민주주의가 많은 광주 시민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왕 세종이 말했다.
"그대의 자질은 아름답다. 그런 자질을 가지고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 해도 내 뭐라 할 수 없지만, 그대가 만약 온 마음과 힘을 다해 노력한다면 무슨 일인들 해내지 못하겠는가."

그들은 10일 동안, 온정신으로 온마음을 다해 온생애를 살았다.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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