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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랑니 빼 물고 인생 쓰다고 하기에는 이르다

[완도의 자생식물] 68. 왕고들빼기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8.10.19 11:29
  • 수정 2018.10.28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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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작은 꽃. 점점 가늘어진 풀벌레 소리. 가을의 소리가 구슬프게 울려야 피는 작은 꽃. 언젠가 임의 눈동자에서 핀 작은 꽃. 이젠 노을빛 끝에 피는 하나의 그리움. 가을 저녁 풀벌레 신호음만큼 점점이 피는 작은 꽃. 차가운 가을 앞에선 모두가 꽃이 된 여자.

쌀쌀한 계절 앞에서도 연한 호박은 여전히 부드러운 선율을 켜고 있는 어머니 같은 마음. 역시나 가을은 다 아름다워라. 수수 알 그리운 가을 하늘을 이고 누가 부르지 않아도 밭 언덕에서 가을 햇빛을 모이고 있다.

벼들이 익어가는 들판에는 어느 농부도 자기가 씨를 뿌려 풍성한 가을이 제 것이라 하지 않는다. 그저 논두렁길 따라 수고의 짐을 내려놓고 누구든지 마음에 빚진 자들에게 공으로 황금 들길을 걸으라 한다. 고들빼기꽃이 피기 시작하면 발길 닿는 데로 가면 어디든 열매 맺혀서 사랑의 길이 된다. 봄부터 부드럽게 쓴맛이 주는 고들빼에게는 이제 사랑니 빼어 물고 인생이 쓰다고 하기 에는 이르다. 햇빛을 달콤하게 받아먹던 여린 봄날도 있었다. 

고들빼기잎도 봄 여름을 지나 가을이 오면 벌레 우는 자국이 있다. 집이 없어도 산과 들에서 야생화는 계절이 바뀌면 상처를 아문 지혜를 가졌다. 고들빼기 역시 쓰디쓴 밤길을 걸으며 여기까지 왔다. 서풍에서 밀려오는 그리운 황금 물결이 밀려드는 한나잘에 우리 삶을 모두 토해내는 듯하다. 왕고들빼기는 국화과의 두해살이 풀이다. 고들빼기, 이고들빼기, 왕고들빼기가 있다. 1~2년생 초본으로서 1~2미터 정도 곧게 자라며 가지를 치기도 한다. 손으로 꺾어보면 흰색의 유즙이 나오는데 맛을 보면 쌉쌀한 맛이 난다. 꽃은 8~10월에 담황색으로 핀다.

키가 크면서 끝에는 새순이 항상 올라오기 때문에 끝을 꺾어주면 가지를 쳐서 여러 가지가 올라와 봄부터 가을까지 올라오는 잎을 계속 나물로 먹을 수 있다. 잎을 따서 물로 씻어 생으로 먹기도 하고 즙을 내어 먹기도 하며 살짝 으깨어 초고추장과 양념을 해서 생채로 먹어도 맛이 있다. 이 꽃은 인간의 길 위에 따뜻함을 전해주고 있다. 

싸늘해진 밤이슬에 꽃을 접지 않고 제 마음속에 꼭꼭 박아 둔 채 별빛 모두 함축한다. 삶의 향기는 작은 소리에도 귀를 열어 그 이름을 알아가는 여정이다. 황홀한 들녘으로 작은 꽃잎의 움직임을 마음이 알아차려 노란 왕고들빼기라고 그들에게 이름을 달아주었다. 따뜻한 밥 한 그릇과 쓰디쓴 고들빼기 잎이 하나의 길에서 만나 눈물을 채워 줄 열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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