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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도, 기쁨도 하늘수박 위에 행복한 기다림

[완도의 자생 식물] 75. 하눌타리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9.01.19 09:07
  • 수정 2019.01.19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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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리는 달맞이꽃처럼 여름에 그리운 임을 더욱더 그립게 하는 치자꽃 향기처럼 가을에 지독한 외로움에 토해내는 들국화 향기처럼 이제는 봄여름 가을이 한 몸이 되어 슬픔도 기쁨도 하늘수박 위에 행복한 기다림이 있다.

깨끗한 바람에 하얀 얼굴을 씻은 낮달도 하늘수박과 동무 되어 외롭지 않고 석양빛에 그리움에 취한 오늘도 하늘수박과 함께 있어서 감사하다. 꽃은 하늘을 쳐다보고 피지만 열매는 나뭇가지에 기대어 땅을 향하여 주렁주렁 달아놓고 있다.

12월 중순쯤에는 모두가 떨어져 홀로 제 갈 길을 가는 풍경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나뭇잎도 반은 땅에 떨어지고 간신히 매달아 놓은 마른 잎들이 맑은 바람과 밝은 달과 흰 구름 속에서 아쉬운 이별을 노래하고 있다.

하눌타리 열매를 하늘수박이고 부른다. 아직은 노랗게 운치 있는 빛깔로 맑고 푸른 하늘에 매달려 있다. 예전에 집터였을 그곳에서 그리움을 하늘 높이 달아놓고 그 세월은 어디론가 가고 쓸쓸한 마음만 하늘수박 곁에서 남아 있다. 독한 사랑의 마음을 이제 낮달과 함께 가장 정결한 눈빛을 주고받고 있는 하늘수박. 12월의 깨끗한 햇빛과 그를 바라보는 그리움에 충만한 사랑만이 하늘수박 곁에서 머물고 있다.

하눌타리는 남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밭가에나 산기슭에 자라는 박과의 덩굴식물이다. 뿌리를 천화분(天花粉)이라고 하는데 마치 칡뿌리처럼 생겼으며 예로부터 약으로 귀하게 썼다. 또한 열매는 맛은 달고 쓰며 성질은 차다. 폐경, 위경, 대장경에 효험이 있다. 그리고 폐를 튼튼하게 하고 담을 삭이며 단단한 것을 흩어지게 하고 대변을 잘 통하게 한다.

날씨가 추워지면 하늘수박은 따뜻한 부뚜막 위에서 걸려있다. 옛 어머니들이 귀뚜라미가 울지 않는다고 해서 이걸 걸어놓았다고 하지만 귀뚜리가 울지 않는다고 기나긴 밤이 덜 외로웠을까? 아마 따뜻한 부엌으로 모여든 벌레들을 위생상 쫓아내기 위해서 이들이 싫어한 하늘수박을 걸어놓았을 성싶다.

여름에 꽃은 실타래를 풀어놓은 것처럼 하늘에 향한 마음은 자유롭다. 하늘수박이 익어갈 때는 파란 하늘이 배경이 되어 사소함에 익숙해진다. 자신을 버리는 데에는 비단 몸뿐이겠는가. 자기만은 고집하는 마음과 정신도 버리는 일이다. 일상에서 변해가는 것들이 명료하게 드러내는 시간이 지금 이때이다. 열매는 자기를 비어냄이 지극히 당연함이다. 아름다움도 놀라움만큼 큰일은 아니다. 그 익숙함은 현재 내 앞에 실재하여 결코 변할 수 없는 생명력이 함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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