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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딪힘과 직감으로 가슴 흔들던 첫봄 같은 꽃

[완도의 자생식물] 80. 노루귀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9.01.19 23:21
  • 수정 2019.01.19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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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많은 봄비에 땅이 틈새가 생기고 새싹들이 나올 길이 열린다. 선홍빛 가슴에서도 하나의 꽃이 되기 위해서 진동하기 시작해야 한다. 이제 봄노래를 담는 바구니만 준비하면 된다.

첫사랑 같은 노루귀를 만난 지 몇 해 됐다. 지난날 삶의 흔적을 안고 어느 산길에서 부딪침과 직감으로 가슴을 흔들던 첫봄 같은 노루귀 꽃. 아마 천명 중에 구백아흔아홉 인연이 지나가고 마지막 천 번째 극적인 만남이다.

지난날엔 한번은 나무와 나무 사이, 길과 길에서 만나 바람의 흠결로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알아보지 못한 인연들이 무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몇 해 전 첫봄처럼 새롭게 다가오는 노루귀 꽃도 지난 세월 속에 몇 번은 스쳐 지나왔을 것이다.

거센 바람이 불어와 굳은 결심이 흔들리고 마음이 한없이 외로워지는데 드디어 산에는 꽃이 피기 시작하고 노루귀 꽃이 이제 보이게 된 것이다. 들꽃과 산꽃을 보기 위해선 화학적 변환이 마음에서 치환된다. 이른 봄눈을 비집고 꽃이 나온다 하여 파설초(破雪草)라고도 하는데,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야생화로서 꽃에 꽃잎은 없고 6장의 꽃받침이 꽃잎처럼 보인다.

꽃대에는 솜털이 많이 나 있고 10 센티 정도에 귀엽고 앙증스럽다. 잎이 노루의 귀를 닮았다고 하여 노루귀라고 한다. 꽃은 흰색, 분홍색, 보라색, 진남색으로 핀다. 이들이 사는 곳은 참나뭇과인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밑에서 여럿이 모여 산다. 바람이 잘 통하는 산길에서도 잘 자란다.
노루귀 꽃은 올봄 여인의 옷 색깔을 미리 알고 피는 것일까. 꽃 색이 흰색, 분홍색, 보라색은 여인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 이런 봄 색깔은 마음에서부터 기다림으로 시작된다. 겨우내 꽃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첫 마음처럼 설레게 하는 꽃이다.

생각건대 오만과 독선에는 생명을 지탱할 수 없는 법이다. 자연은 자기 자신만으로 완성될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다. 노루귀 꽃도 암술과 수술이 갖추어져 있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며 곤충이나 바람이 찾아와 결실하게끔 도와줘야 한다. 꽃눈이 형성하도록 호르몬 분비가 있어야 한다. 꽃받침과 꽃잎 그리고 수술 암술이 조화와 균형이 맞아야 열매가 된다.

눈 속에 꽃을 피운다는 것은 스스로 인내하지 못하면 꽃이 되지 않는다. 독한 눈물만으로 피는 노루귀가 약간 독성이 있는지도 모른다. 북쪽을 바라는 산에서 주로 서식한다. 그들만의 사는 방식이 겨울에 추위를 더 견뎌야 한다. 비로소 봄이 오면 살아남은 자만이 천국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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