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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하는 '차이와 병존'

[완도 시론] 박준영 / 법무법인 '새봄' 변호사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06.10 14:51
  • 수정 2019.06.10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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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 법무법인 '새봄' 변호사

신영복 선생님은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20년 20일 동안 옥살이를 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쓴 ‘담론’에 나온 감옥에서 만난 목수 이야기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목수가 땅바닥에 나무 꼬챙이로 아무렇게나 그린 집 그림을 보고 많이 놀랐다고 합니다. 집 그리는 순서 때문이었습니다. 그 목수는 주춧돌부터 시작해서 지붕을 맨 나중에 그렸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일하는 사람은 집 그리는 순서와 집 짓는 순서가 같구나. 그런데 책을 통해서 생각을 키워온 나는 지붕부터 그리고 있구나’

신영복 선생님은 여기서 톨레랑스와 관용을 다시 생각하자는 말씀을 하십니다. 관용의 정신인 톨레랑스. 자신과는 다른 타인과의 차이를 자연스레 인정하면 그 차이에 대해서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우리 사회에 이 ‘너그러움’조차 있는지 의문이어서 ‘차이와 병존’으로 대체해 봤습니다. ‘담론’을 계속 인용합니다.

만약 그 목수의 집 그림을 앞에 두고 내가 이렇게 말했다면 어떨까요? “좋습니다. 당신은 주춧돌부터 그리세요. 나는 지붕부터 그립니다. 우리 서로 차이를 존중하고 공존합시다.” 이것이 톨레랑스의 실상입니다. 차이를 존중하고 다양성을 승인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차이와 다양성은 그것을 존중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어야 합니다.

저는 이 ‘새로운 시작’에 주목합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목수의 집 그림 앞에 앉아서 나 자신의 변화를 결심합니다. 창백한 관념성을 청산하고 건강한 노동 품성을 키워 가리라는 결심을 합니다. 차이는 자기 변화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출발이어야 합니다.

죄를 감추고 진실을 은폐하였던 우리의 지난 역사의 벽이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진범을 풀어준 검사의 잘못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검찰의 문제점 지적에 누구보다 더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요즘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제가 검찰 수사의 일면을 보고 전체를 평가한 게 아닌가. 저의 여러 비판들이 묵묵히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많은 검사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준 것은 아닌지. ‘주춧돌부터 그려가는 현장’을 나는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이전의 김학의 전 차관 사건 수사를 두둔하는 게 아닙니다. 이전에도 밝힌 바와 같이 ‘성범죄 의혹’과 관련한 이전 검찰 수사를 문제제기는, 당시 수사팀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번 김학의 사건 수사결과를 놓고 말씀드립니다. 증거를 가지고 사실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증거와 사실에 대한 평가는 엄격해야 합니다. 현실적인 한계를 고려치 않고 수사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무책임합니다. 그런데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조차도 정치적인 이해관계 때문인지 비판다운 비판을 하지 않고 있는 현실을 보며 나만 지붕부터 그린 게 아니었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대립과 반목으로만 살아갈 수 없는 세상입니다. 때로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를 통해 힘을 얻을 필요도 있을 텐데요. 힘이 필요할 때 지금 비판 아닌 비판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하려 하는지. 저는 이 상황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관용과 톨레랑스는 결국 타자를 바깥에 세워 두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타자가 언젠가 동화되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다시 생각해 봅니다. “현장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이를 때로 비판하며 개선을 이야기하는 능력을 키워 가렵니다.” 담론을 인용하며 부족한 오늘의 생각을 마무리합니다.

나는 문득 그 집 그림에서부터 또 하나의 먼 길을 시작합니다. 자기 개조의 길입니다. 우선 기술을 배우고 일하는 품성을 키워 갑니다. 그것이 쉽게 가시적 성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러한 의지가 새로운 동력이 되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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