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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궐례와 충무공전 헌다의례를 준비하며!

[완도차밭, 은선동의 茶 文化 산책 -80] 김덕찬 / 원불교 청해진다원 교무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09.20 13:00
  • 수정 2019.09.20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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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찬 / 원불교 청해진다원 교무

가리포진 498(2019)년, 9월 24일. 완도객사에서 완도문화원이 주관하여 뜻있는 이들과 함께 헌다의례로 망궐례를 재현한다. 동시에 이순신 장군과 중국의 진린 장군 추모의례도 함께 진행한다. 헌다의례는 완도 청해진 차인회 회원들이 정성스레 준비한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수군 객사인 완도객사에서 망궐례의 헌다의례를 올리는 것은 매우 큰 의의가 있다 하겠다. 완도의 객사는 가리포진의 숙박시설로 매월 초하루와 보름마다 궐패, 혹은 전패(임금을 대신)를 모시고 대궐을 향해 임금의 만수무강을 빌며 예를 올리던 곳으로 역사성과 전통 문화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 지역 고유의 발전 계승해야 할 대표적인 전통문화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왕정시대에 군주는 절대 지존이다. 따라서 예를 올릴 때에는 신, 절대자, 성인, 하늘에 버금가는 존엄적 위의를 가진 존재이므로, 그에 맞는 4배의 예를 올린다. 물론 성군으로서 백성들에게 자애로운 어버이와도 같은 친애함도 있으나, 그의 권력과 위의는 가히 만인지상의 절대 권력과 생사여탈권을 가진 존재로서 존경을 떠나 경외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특히 조선의 임진왜란 당시의 초라하고 무능한 왕이었던 선조마저도 그 엄청난 천권을 휘두르고, 공맹의 후예라 일컫는 당시 정승판서들의 당쟁에 가린 어두운 지혜가 국난의 또 다른 원인이었음을 생각할 때 참으로 기막히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순박한 백성들과 지방의 신하들은 충정어린 마음으로 주군을 향한 도리와 예를 올렸으니, 그 마음 참으로 애잔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이것이 당시를 지배하던 어두운 시대사상이었다. 오늘날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시대사상이 결국은 구국의 기적을 낳고 천고에 빛날 충정의 심법을 세상에 내 놓았으니, 그 이름 거룩한 성웅 이순신장군! 그리고 택한 죽음의 길로 나라와 사직을 구했으니.

망궐례는 이렇게 나라와 백성을 어버이처럼 돌보고 선정을 베푸는 성군을 향한 신하와 백성된 도리로서의 예를 올리는 가장 아름다운 전통적인 풍속의 하나이다. 또한 호남제일번이라는 의미처럼 완도 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외적으로부터 수호한 성웅 이 충무공과 역사적 조력자였던 진린을 기리기 위한 추모의례. 얼마나 소중한 일이 아니겠는가? 

당시 춘추관, 성주, 충주 등 우리나라 곳곳에 비치해있던 4대 사고(사서를 기록 보관한 곳) 가운데 모두 불타고 전주사고만 남았다고 한다. 만약 이 전주사고도 불탔더라면, 우리의 역사는 1592년 임진란 이전의 시대는 신화시대가 될 뻔했다고 한다. 성웅 이순신은 단순히 바다의 왜구를 막아낸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전략적 행로를 원천적으로 차단함으로써 전라도를 지키고 죽음으로써 전쟁을 종식시켰다. 결국 우리의 역사 전체를 통째로 지킨 우리나라의 수호자인 것이다. 이러하니 그 후예들로서 어찌 그들을 기리고 추모하며 정성어린 차 한 잔 올리지 않겠는가? 또한 중국 진린 장군의 이충무공을 향한 진정어린 신의와 조력에도 감사의 예를 표할 수 있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이와 같이 헌다의례, 혹은 헌공다례는 차를 사랑하는 차인으로서 올릴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의례이다. 지극히 정성스러운 법제, 위의, 행다법으로 표현되는 의례인 만큼 그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리하여 헌공다례를 모든 행다, 혹은 차문화의 정수요, 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차가 갖는 내면적 심법까지 모두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으로 차를 정신문화의 꽃이라 한다. 차 한 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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