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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과 차 한 잔!

[완도차밭, 은선동의 茶 文化 산책 -83] 김덕찬 / 원불교 청해진다원 교무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10.11 09:36
  • 수정 2019.10.11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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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찬 / 원불교 청해진다원 교무

얼마 전, 약 10여년 쯤 전에 보았던 적벽대전이라는 영화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때도 그 영화를 보면서 다양한 장면들과 이야기를 통해 감동을 받은 바 있었는데, 새삼 다시금 그 감동를 맛보게 되었다.

실제로는 매우 짧은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중국 삼국시대인 208년에 일어난 전쟁이며, 후한의 승상이었던 조조의 패배로 그 내용을 장황하게 기록해 두었을리 만무한 일이다. 그러나 나관중의 천재적인 상상력의 필력으로 <삼국지연의>라는 소설로 세상에 나왔고, 오늘날 화려하고 웅장하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세상속에 다시 태어난 것이다. 굳이 그 내용을 나열하지 않겠다. 다만 특성들만 적어본다. 희유의 천재 전략가 제갈량과 방통, 그리고 주유와 조조. 또한 관우, 장비, 조자룡을 위시한 당대 최고의 영웅들이 펼치는 화려한 무술 등, 그 모두가 참으로 아름다운 대 서사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의 묘리를 이용한 지혜, 인간의 심리적 묘법을 조절하는 탁월한 지략, 주유와 제갈량이 금 연주로 서로 소통하는 모습과 연주하는 자리에서 정갈하고 법도 있게 차를 우려내는 주유의 부인이자 아름다운 차인으로서의 소교. 그리고 영화속 적벽대전의 결정적 승패를 좌우하는 장면으로, 홀홀단신 적장 조조를 만나 차 한 잔 우려내는 소교의 담대함. 북서풍이 동남풍으로 바뀌는 시간을 벌기위한 고육책으로 적진에 들어 찻자리를 펴고, 소교로부터 다도의 문외한이라는 질타를 들으면서도 찻자리를 떠날 수 없는 조조의 모습! 전쟁 승패를 결정짓는 촌음을 다투는 순간인데도 아름다운 여인의 행다와 물 끓이는 묘법과 그 소리. 그리고 넘치는 차 한 잔으로 비유하여 대신 비워내 준다 하고, 철군 요청과 대의와 명분 없는 욕망에 대한 일갈을 꼼짝없이 들어내는 오만한 조조의 모습. 그러나 이내 풍향이 바뀌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하는 상대의 화공으로 결국 조조는 100만 대군을 잃게 되는 패장이 되고 만다. 뿐인가? 아름다운 사랑의 연가와 향수에 대한 인간적인 고뇌, 생사를 넘나드는 보이지 않는 경쟁과 지략들 등, 한마디로 가슴 깊이 감동으로 남게 하는 명품 장면들을 오래도록 잊을 수 없게 한 멋진 영화이다. 너무도 푸르다 못해 시리디 시린 쪽빛 하늘이 아름다운 가을, 한 권의 책도 좋지만 이와 같이 두고 두고 남을 만한 아름다운 영화 한편 어떨까. 

영화속 차 이야기를 그려본다. 고요하고 소담스런 사랑채에 시대의 두 천재가 마주 않아 금을 타면서 서로의 심중전략과 그 뜻을 나눈다. 정성스럽고 절도있는 다법과 몸가짐, 절제된 다구들의 정연함, 그리고 탕관의 물 끓는 소리에 맞추어 차 우려내는 다소곳한 손 사위에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소교의 행다는 천하대장부인 제갈량과 주유도독에게 바치는 헌공의 의례였고, 지극한 정성의 묘법으로 행한 다례였다. 참으로 아름다운 행다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행다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고 또 하여 지극히 자연스러움으로 온 마음, 온 몸에 가득 슴베어 있어야 한다. 나아가 하고자 하는 바 없어도 행다의 묘법이 자연스레 행해졌을 때 비로소 행다를 한다 할 수 있다. 그런 차인을 만날 수 있다면, 아니 그런 차인과 벗이 될 수 있다면, 아직은 스스로 부족함을 알기에 그 벗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그리하여 아침 마다 정심재계하고 한 잔의 차를 법계를 향해 올리고, 그 한 잔, 한 잔을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지만, 차인의 길은 참으로 어렵고 고독한 길이다. 그리하여 두 생각 없는 마음으로 차 한 잔에 선심을 깨워보니, 찻잔 속에 선향이 가득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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