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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도반님과 차 한 잔!

[완도차밭, 은선동의 茶 文化 산책 -84] 김덕찬 / 원불교 청해진다원 교무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10.18 11:40
  • 수정 2019.10.18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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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찬 / 원불교 청해진다원 교무

이른 아침 일찍, 원로님께서 찾아 오셨다. 약10년 전, 이곳 은선동의 도량 살림을 하셨던, 지금은 퇴임하신 원로시다. 평생을 오롯하게 남을 위하고, 세상을 위해 희생 봉사하셨던 어른이시다. 이제 연세가 높아 운전하시기가 힘들어 이달 말이면 20여년 넘게 가지고 다니던 애마를 보험도 만기되고 하여, 폐차를 결심하고 동기 도반과 더불어 마지막 자가운전 여행 삼아 오셨단다. 그런데 그 여행의 목적은 매우 단순하셨다. 다름아닌 차꽃을 보고 싶고, 차밭을 보고싶고, 나름 애쓸 후배를 보고 싶으셨단다. 평생 차를 사랑하여 즐겨 드셨고, 노년에 자원하여 오셔선 온 정성을 다해 차밭을 다듬고 관리하며 공부하셨던 곳을 마지막으로 둘러보고 싶으셨던 것이다. 풀이 무성한 이곳저곳을 둘러보시며 덮여있는 넝쿨 한 뭉치를 걷어내 보신다. 열매도 몇 줌 따 보시고, 전지하고 난 뒤에 가지런히 예쁘게 올라온 찻잎들을 한 옹큼 따 보신다. 맑고 고운 얼굴에 화사한 미소가 가득이시다. 천진스럽고 해맑은 아이처럼 옛 시절을 회상하며 이런 저런 많은 말씀을 정겹게 토해 내신다. 행복이다. 바로 저 모습이 아름답고 행복 가득한 모습이다. 굳이 성직자, 수행자, 구도자 등의 표현으로 이야기 하지 않아도 그 얼굴엔 평온한 자비와 따스함과 까마득한 후배를 배려한 넉넉하고 여유로운 해학적 웃음을 가득 쏟아내고 계셨다. 덩달아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다. 

다쳤던 손을 잡아주시며 올해 차농사는 어땠어 하시며, 차맛을 잔뜩 기대하는 모습으로 찻자리에 마주 앉았다. 3년여 만의 찻자리여서 일까? 조금은 설레이고 살짝 긴장되기도 하였다.  아마도 열심히 준비하여 면접관 앞에 앉아 시험 보는 것 같은 마음이랄까? 특히 직속의 선진이시기에 더 그런 듯 싶다. 후진으로서 그간 갈고 닦은 기량을 총 동원하여 선배 차 전문가에게 감정받는 듯한 묘한 마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약간의 긴장도 잠시, 여래향(완도차밭 청해진다원 발효차) 차의 향과 맛이 갖는 매우 독특함이 잘 살아나 한 잔 한 잔 드시면서 연신 감탄을 자아내신다. 아~ 향이 참 좋다! 음~ 맛있다! 참~ 좋다! 너무도 행복하다! 감사하다! 참, 감사하다! 하고, 그 탄성이 잠시도 쉬지 않으신다. 고요하고 쌀쌀한 가을 어느 날, 은선동 차밭 도량이 갑자기 화사한 어느 봄날처럼 따스함 가득 넘실대는 듯하다. 

선진과 후진의 만남! 35년 전쯤, 처음 뵙고 도가의 공부담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갓 스무살 시절 그 어느 날의 행복했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이제는 8순을 앞두고 원로원에서 정양하시다가 문득 이렇게 후진을 살펴주시기 위해 노구를 끌고 어려운 걸음 해 주시니, 그 자비로움에 온통 감사의 마음뿐이다. 점심공양은 오히려 생선구이로 대접을 받게 되었으나, 저녁은 있는 반찬 정갈하게 차리고, 손수 밥을 지어 정성스레 올리니, 두 공기를 게눈 감추 듯 드신다. 그리고, 또 차 한 잔! 여러 가지 차를 마시면서 차의 맛과 향, 그리고 제다법에 대한 이야기들 까지 많은 다담들 속에 푹 젖는다. 얼마만인가? 차에 대한 사랑과 열정, 고수와 나누는 다담들, 더하여 삶속에 녹아든 공부담까지 나누니, 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튿날 아침 일찍 식사를 마치고 다음 코스를 향해 훌훌 털고 가신다. 그 뒷모습에 미소가 머문다. 삶의 아름다운 여행자. 삶은 시간의 또 다른 표현일까? 갑작스레 오셔서 준비하지 못하고 맞이하여 못내 송구한 마음뿐이었으나, 그 마음도 잠시 선후진의 자연스러운 다담은 아름다운 가을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가 곧 찻자리 아취의 승이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던 참으로 귀한 찻자리 였다. 차 한 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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