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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의거, 동학과 소안항일운동[특별 기고] 윤정현 / 강진동학농민운동 기념사업 준비위원장
완도신문 | 승인 2019.11.01 11:31
윤정현 / 강진동학농민운동 기념사업 준비위원장

필자는 올해 강진의 동학농민혁명을 조사해 사료집을 발간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느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조사 작업에 필수인 기존 자료들 대부분이 역사학자들의 동어반복적 자기표절이라는 점, 전사(戰史) 중심이라는 것이다. 특별법이 제정됐고, 올해 들어 5월 11일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됐지만, 많은 활동이 전북을 중심으로 해서 이뤄지고 있고, 같은 전라도지만 전남지역은 장성과 장흥을 제외하고 그리 활발한 활동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강진의 경우 당시 인구의 3% 정도인 500여명 정도가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사망자 수가 이렇고 참여자 수는 훨씬 더 많았을 것이며, 각지에 동학마을이 있었다는 것 등으로 봤을 때, 동조자까지 합하면 ‘소수 반대자’를 뺀 대부분이었을 거다. 하지만 이들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그나마 국가기록에 이름자라도 적힌 사람이 45명 정도고, 그 중 유족이 드러난 사람은 채 절반도 못 될 성 싶다. 그들은 전투 중 총에 맞아 사망한 사람, 거의가 총알도 아까워서 유지기(짚더미)에 씌여 불에 태워 죽었고, 재산을 강탈당하고 자식들은 살던 곳을 떠나 멀리 숨어들어가야 했다. 반면 관변에 빌붙었거나 이후의 친일파들은 그때는 물론 지금까지도 떵떵거리며 잘 먹고 잘 산다.

완도라고 다를까? 권력체제의 중심으로부터 멀면 멀수록 털끝만한 연줄이라도 있는 ‘마름’ 같은 축생들이 설치기 쉽상인 법. 전부 섬으로 되어 있는 완도는 장흥, 강진, 해남보다 더하면 더 했지 못하진 않았을 거다.

우리 역사의 근대를 열어 재낀 사건이 동학인데, 완도에서는 그보다 11년이나 앞선 1883년에 계미의거가 있었다. 기실 이 무렵엔 지배층의 탐학이 하늘을 찌를 정도여서 조선팔도 각처에서 민란이 일어났지만, 완도처럼 ‘향도청’이라는 자치기구까지를 설치해 운영한 곳은 없었다. 그러나 이 짜릿한 자치의 경험은 안핵사(按覈使)의 순무활동(巡撫活動)으로 참혹하게 막을 내렸다. 동학은 그 11년 뒤에 일어났는데, 두 사건의 흐름을 보면 거의 판박이다.

이 의거와 동학 간의 직접적인 연관관계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당시의 시대 분위기로 볼 때 연관성이 없다고 보기는 곤란할 것이다. 하지만 일제하 소안도 항일독립운동은 동학과의 연관성이 여러 기록에서 잘 드러난다. 또 지금은 특별법에 의해 설치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활동성과로 완도 지역의 여러 사료들이 많이 밝혀져 있는데, 이것을 씨줄 날줄로 엮어 완도의 역사로 꾸며내는 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흔히 우리는 ‘벤취마킹’을 퍽이나 좋아하고, 이런 작업이라면 대학교수나 박사 같은 전문가들에게 용역을 줘서, 폼 나는 책자 하나를 만들어내면 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천만의 콩떡 만만의 시루떡’이다. ‘완도/나’의 주관적 여건이 남들과 다른데, 우리는 꼭 신안이나 남해 같은 유사한 곳들의 사례를 빌려오고, 나의 처지가 남들과 다른데 ‘이웃 따라 장에 간다.

사람 사는 공동체의 소통은 말로 이뤄지고, 그것은 신화나 설화, 구전, 민담, 역사 같은 것들로 체계화될텐데 이런 작업을 내가 하지 않고 남의 손을 빌린다면,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내 중심이 아니고 손을 빌린 그 남의 의중을 벗어나기 힘들다.

과거를 돌아봤을 때,  개인의 자각과 자강, 생산성이 없는 ‘우리’는 늘 그 의미가 퇴색되거나, 누군가에 의해 그 열매가 따먹혔다. 민주주의나 정치현실도 마찬가지, 우리가 가진 풍성한 역사나 자산에도 불구하고 늘상 중앙 정치세력의 ‘핫바지’ 노릇이나 했던 짓은 이제 그만둘 때다. 장보고의 최후는 ‘자객의 칼’이었다. 우리는 이런 과거로부터 배워야 한다.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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