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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 돈사 현장은 1905년 을사늑약 때처럼 을씨년스러웠다

“행정이 주민 모르게 내준 허가, 그리고 패소... 애꿎은 고금 주민들이 무슨 죄냐?”

  • 박주성 기자 pressmania@naver.com
  • 입력 2020.04.24 15:03
  • 수정 2020.04.2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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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 중에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있다. 날씨나 분위기가 쓸쓸하고 스산할 때 보통 사용하는 말이다. 이 말은 1905년 이후부터 쓰이기 시작했는데, ‘을씨년스럽다’는 ‘을사년스럽다’가 변한 말로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일본에 빼앗긴 을사조약(늑약)으로 이미 일본의 속국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던 당시, 온 나라가 침통하고 비장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조약이 체결된 1905년 11월 17일 이후로 몹시 쓸쓸하고 어수선한 날을 맞으면 그 분위기가 마치 을사년과 같다고 해서 ‘을사년스럽다’는 표현을 쓰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고금 돈사 소송 최종 상고심에서 지난 3월말 패소하고 돈사 사업주의 ‘허가취소 집행정지’가 법원에 의해 받아 들여진 이후부터 고금 돈사 현장은 공사를 강행하려는 사업주와 이를 막아서는 고금 주민들 간의 대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고금 주민들 입장에선 고향을 망칠지 모를 돈사가 자신들의 땅에 들어서는 것은 1905년 일본에게 외교권을 빼앗긴 을사조약(늑약)때처럼 침통하고 비장한 분위기이니 을씨년스러울 수 밖에.
며칠 전 고금청년회장의 페이스북에 몇장의 사진과 함께 “요즘 고금청년회는 돼지돈사를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중입니다” “오늘로 15일째 매일 반복되는 출근지가 이곳이 되었습니다..... 공사를 진행하려는 업체측과 매일 싸우고 달래고 부탁도 해 보지만 자기들 입장에서만 애기하고 있습니다..... 결국 4건의 고발이 접수되었고 저희도 변호사 선임하고 대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동참해주시는 각마을 주민들과 언제나 저에게 든든한 빽이 되어주는 회원들이 지치지않고 끝까지 저지할수 있도록 많은 격려 지지부탁드립니다”라는 글이 올라 왔다.

격렬한 대치 사진은 고금 돈사 현장으로 기자를 이끌기에 충분했다. 사업주의 돈사 설치 공사를 막아서고 있는 고금 돈사 현장에서 만난 마을들은 무엇보다 “고금엔 절대 돈사 반대”라는 한마음이었다. 현장 대책반 중심에 서 있는 김세윤 고금청년회장은 “투트랙으로 사업주와 협상도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도 같이 이야기했다.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막고 보겠다는 의지가 대단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냐고 물어보니 “돈사 반대 고금대책위 차원에서 사업주의 사업 취소를 설득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보상을 어느 정도해줄 것인지”를 협상하고 있다는 말이 되돌아왔다. 
고금돈사 대책위는 지난 3월말 총회를 갖고 고금번영회장, 고금이장단장, 고금여성단체 협의회, 돈사 인근 마을 항동리 이장, 고금청년연합회장로 공동대표로 하고, 고금 출신 군의원 2명이 회의 때마다 참석해 고금 돈사는 전체 면 차원에 연일 관심사가 되고 있다. 돈사 반대를 위해 고금 사회단체가 기금을 조성하기도 했다. 

고금 돈사는 고금돈사 2,200평이다. 현장에서 반대에 나서고 있는 주민들은 왜 하필 항동마을 매생이·굴 어장으로 가는 담수호 하천과 1km도 떨어지지 않는 곳에 돈사를 해야 하느냐가 불만이다. 바다로 나가면 생태계 오염이 불보듯 뻔하다는 것이 주민들이 생각이다. 또 돈사에서 나오는 돼지 분뇨는 중금속을 포함해 잡식성이라 냄새와 환경오염이 문제가 되는데 세심하게 판단하지 않고 너무 안일하게 행정에서 허가를 줬다고 야단들이다.
고금 주민들은 자기들 고향에 돈사 허가가 나온지도 몰랐다. 인근 신지면이 돈사가 들어선다고 군청 앞에 연대 시위를 하러 나갔다가 고금에 돈사 허가가 났다는 얘기를 처음 듣고는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금청년회 김세윤 회장은 “고금 돈사가 허가 났다는 소리를 신지 돈사 반대 집회 때 김양훈 의원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지금도 주민들도 모르게 허가가 난 부분에 대해 주민들이 행정에 대해 분개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매립지 농지에 대한 소유권 이전 매매와 관련해서도 농지전용 벼농사를 짓는 곳이라 농지취득 확인서가 있어야 되는데 행정에서 그런 것을 확인하지 않고 관행적으로 해온 것 같다”고 행정에 대한 불신으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갔다.  
이날 고금 돈사 현장에 같이 자리한 이덕암리 장율동 이장도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벌써 째다. 군청 앞 어르신들 모시고 으쌰으쌰했는데 신지 돈사 투쟁 참가 안했으면 여태 몰랐을 거다. 누구 전결로 했냐? 군수 모르고 있었냐? 모든 행정은 군수가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거 아니냐?” 행정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장 이장은 군청에서 사업주에게 재소송를 통지한 것을 언급하며 행정에서 재취소 소송을 준비 중이라는데 어떻게든 좋은 결과가 나와 돈사가 취소되는 결과로 연결되길 바라는 눈치였다.

최종 상고심까지 패소하고 처음에 사업주 공사업체와 실랑이를 벌이며 4명이 입건되고, 엊그제는 업무방해로 1명이 추가 고발됐다고 한다. 어려운 상황에서 고금청년회 김 회장은 “매일 아침 동네분들께 인사드리고 한마을도 빠지지 않고 3~4명씩 나온다. 주민들이 관심 있게 물어보고 참여하고 있다”고 주민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러며 군청의 건축허가 취소 재소송에 대해서 환경 등 재취소 사유 6가지를 왜 먼저 1차 재판 때 넣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만큼 주민들 입장에선 행정에서 신경을 안썼다는 시위인 셈이다. 
이날 고금 돈사 사업추진 저지에 막아서기 위해 현장에 대치를 이어가는 주민들은 지난 허가취소 소송에서 주민들의 동의서를 부정하게 쓴 것을 근거로 행정에서 허가를 취소하고 재판에 간 것은 “서명한 어르신들이 문제 아니냐”로  몰아가 행정이 잘못을 면피용 하려고 한 걸로 이해하고 있었다.

고금에 돈사가 들어서는 문제를 마을 이장단 회에서라도 말해 주민수용성 조사 언급이라도 했다면 이 지경까지 왔겠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고금 주민들은 도남리, 부흥리, 척잔리, 항동리 4개 부락 주민들을 견학시킬 때도 사업주가 연구소 지은다고 했다는 말만 했다고 했다. 그때까지도 주민들은 몰랐고 행정에서도 아무 언급을 안했다는 것. “행정에서 허가날 때까지 아무 언급 안해, 그 과정까지 지나고 돼버렸다, 쉬쉬했겠지. 한우 축사 1개동을 짓더라도 자료가 있는데 3천두 돈사를 짓는데... ” 그것이 고금 주민들이 생각하는 상식이었다.
최종 패소한 고금 돈사 재판에도 주민들은 패소할지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변호사들도 판사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묵묵부답이었고, 행정에서도 아무 얘기도 안하는 걸 보고 주민들 스스로가 느낀 그대로였다. 스트레스로 돌아가신 정태연 어르신이 증인으로 나서 스트레스를 받을 문제는 아니였다는 것이다. 80세가 넘은 어르신이 무슨 판단력을 가지고 서명을 했겠느냐는 동정 어린 마음이 주민들의 미안함이었다. 돈사 현장을 나서며 드는 생각은 자칫 마을주민간 갈등과 반목으로 이 문제가 변질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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