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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다리는 그리움의 불빛으로 되돌아 온다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21.04.16 09:21
  • 수정 2021.04.1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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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이름할 수 없는 내 안의 풍경을 찾는다.
아름다운 산과 강 그리고 바다와 햇빛을 누비며 가슴이 역력해질 때까지, 그 순간 그곳에 닿으리라 믿는다.
그런 마음으로 매일 아침 새벽 대문을 나선다.


양석 씨.
1969년생이라고 했다.
최정환 약산면장에게 약산면에서 자원봉사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주저없이 양석 씨라고 했다. 양석 씨는 관내에 많은 눈이 내려 제설 작업과 태풍 피해로 도로가 유실됐을 때 말하지 않아도 이른 새벽부터 면사무소 직원들보다 빨리 필요한 곳에 찾아가 봉사하는 인물이란다.


최 면장의 말을 듣고나서 약산면 관산포가 내려다 보이는 구암한옥마을 공사장에서 만난 양석 씨는 요즘 봄볕에 계속해 일을 했는지 검은 얼굴에 공사현장만을 누비고 있는지 조금은 투박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웬지 모르게 정감이 가는 얼굴이었다.
지치지 않냐고 묻자, 양석 대표는 “매일 새벽, 오래 전 젊음이 시작될 때처럼 길을 나서고, 그 길 위에서 지치면 다시 안온함이 기다리는 그리운 불빛으로 되돌아온다”고 했다.


그러며 “매일 느끼는 바람과 물, 늘 함께 있는 이들의 웃음소리와 같은, 사소한 것들이 삶의 이유이자 목적이기 때문에, 그것이 새로운 변화이자 삶의 원천이 된다”고 했다.
이어 "기쁨과 행복은 어디에나 있다. 무엇이 나를 기쁘게하고 행복한지를 안다면 굳이 삶의 목적과 사명이 거창하지 않더라도,  그런 삶이 목적이라면 성과라고 하는 것은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중요하지가 않다"고.


양석 대표는 2012년 볼라벤 때에도 그렇고 몇 년 전 적조 때문에 양식장의 광어들이 때죽음을 당했을 때도 앞장서 매몰처리를 도맡았으며 지역 내 어려운 일에는 적극 나섰다고 했다.
약산면 우두리가 고향인 양석 씨는 1969년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약산에서 성장해 군복무를 하기 전까지 88년부터 2년간 부산에서 산 것을 빼고는 계속해 약산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고향에 살 게 된건, 그냥 마음이 편안하다고.
마음씨 좋은 아내와 결혼해 슬하에 2남1녀를 두고 있다고.
큰 뜻이 있어 봉사를 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는데, 하는 일이 건설업이라 포크레인과 장비가 있고해서, 고향을 위한 일이고 그 고향을 위한 일이 나를 일이었다고 했다.
"난, 결코 홀로 존재할 수 없잖아요"
"또 내리사랑이잖아요!"
"나라는 존재가 있기까지, 고향 햇살과 고향의 달빛과 바람 한 줌까지 나에게 정기를 불어넣어주고, 내가 그들에게 되갚지 못하니까 고향의 어려운 일을 도와주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사랑이고 내리 사랑이 아닐까요?"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라는 질문을 너무 오랜 세월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고.
고향에서 살아가며 삶을 진지하게 마주보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느껴졌단다.
삶은 행복한 것을 찾기에도 바쁘고 그 행복은 누가 찾아줄 수 있는것이 아니기에 어느 날 재능기부를 하다보니 자신의 일이 되고 봉사가 습관이 됐다고 했다.


앞으로의 바람은 큰 것은 없고 가족들 건강하고 지역의 건설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건설여건이 만들어 지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사회활동으로는 약산면청년연합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완도군체육회 이사와 약산면주민자치위원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끝으로 양석 씨는 운명이란 신이 만들겠지만, 그 운명 안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는 순전히 자신의 몫이고 자신의 책임이다는 말과 함께 넉넉한 웃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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