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호미 들고 논수밧 만든 손으로 자식을 어루만질 때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1.05.29 11:28
  • 수정 2021.05.29 11:29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쑥갓꽃 옆에 있는 당신은 언제나 마늘 냄새가 난다.
쑥갓꽃 옆에 가만히 앉아 있는 당신은 노란 쑥갓 꽃 보다 더 아름다운 얼굴로 피어난다. 치맛자락에 묻는 흙으로 그려진 노란 쑥갓꽃이 다시 피어났나니 온 땅이 당신의 마음.
언제나 텃밭에 앉아서 우리들을 기다리는 당신. 이제 우리가 그 자리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머리에 하얀 수건을 두르고 그 선한 모습이 어느 날 하얀 꽃이 되었다.


당신이 없는 자리에 아직도 노란 쑥갓꽃이 피어 오월의 하늘을 아름답게 채우고 있다. 어머니의 젊은 날에 넓적한 상치에 쑥갓 잎 얹어 한아름 입에 넣으셨던 그 모습이 우리를 기르는 힘이었다고.


쓰디쓴 인생을 쑥갓 냄새로 달랬던 그 세월이 좀 더 부드럽게, 천천히, 조용히, 중간에서 지혜롭게 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왔다. 당신의 불행했던 얘기는 없고 그냥 쑥갓꽃 옆에서 앉아 있는 모습이 가장 쓸쓸한 꽃이 되었다. 이젠 텃밭에 쑥갓 꽃만이 당신의 지나간 세월을 이야기하고 있다.
영원히 그 텃밭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지나간 세월의 자국도 없이 노란 씀바귀꽃보다 지독한 삶의 이야기도 없이 몇 그루 쑥갓 꽃만이 그 자리에 다시 피었다.


쓴 음식 중에 나의 첫 경험은 쑥갓이다. 쑥갓을 누런 된장과 함께 상치에 싸 먹었던 세 가지 냄새가 참으로 잘 어울린다. 그땐 하우스 재배가 아니었던 터라 상치도 약간 쓴맛이 났다. 세월이 흘러 어머니 나이만큼 되어서 예쁘게 핀 쑥갓 꽃을 본다. 부드러운 어린잎만 알다가 세월은 한참 지나 나에게 아름다운 노란꽃을 보여주었다.
잎은 맛으로 꽃은 눈으로 이렇게 오기까지 당신의 진정한 마음이 있었다는 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무꽃, 배추 꽃 지면 꽃잎 가지런히 노랗게 꽃이 피네. 허물어진 돌담 옆에서 어머니 마음이 다시 피었네. 호미 들고 다소곳이 앉아 땅에다 시를 쓰는 당신.


자식들이 오면 금방 일어나 흙손으로 만져주어도 그 향기는 꽃보다 진하다. 그 진한 흙냄새가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때때로 강하게, 선하게, 삶의 경계에 있을 땐 어떻게 대처하는 지혜를 주었다.
논수밧 가는 길을 만들고 그 길을 오고 가는 중에 시와 노래를 부른다. 그것이 세상을 떠받치게 한다.


내 유년 시절 쑥갓꽃을 보지 못했지만 어느덧 야생화가 보이는 나이에 가장 가깝게 있는 무꽃 배추꽃 쑥갓꽃이 보인다. 그 속에 어머니 꽃이 있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아무도 모른다.
어머니 꽃이 내 마음속에서도 들어와 있었네. 이 세상에 가장 사랑스러운 것들이 그리 쉽게 오지 않는 걸 먼 세월을 걷고서야 알았네. 오늘 쑥갓꽃 한 다발을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에게 주고 싶는 걸..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