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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 한걸음씩 다가가며 너를 바라볼 때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1.07.10 12:45
  • 수정 2021.07.10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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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내린 자리에 무성한 풀잎이 또다시 뿌리에 내리고 그 열매는 한 순간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생물은 하나같이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그 시간 속에 숱한 고뇌와 인내, 그리고 외부로부터 닥쳐오는 어려움을 차근차근 이겨내야 하나의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듯이 여기서 느끼는 것이 있다. 햇빛을 받아 푸른 열매가 빨갛게 익어가는 동안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땅에서 물을 퍼 올려 대사 작용하여 식물이 건실하게 자랄 수 있도록 밤과 낮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요즘 서양의 꽃들이 많이 들어와 우리 야생화가 한적한 산과 바닷가로 밀리는 경향이 있다. 봄여름 가을 지나면서 야생화는 살아남을 확률은 아주 낮다.

 


스스로 살아남아 산에 들에 피어있는 야생화를 보면 애잔하면서도 거울 속에 나를 본 듯하다. 범부채 꽃은 장맛비에 더욱 선명하게 핀다. 살아있다고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 싱싱함은 어디에 비할 데가 없다. 기온이 다소 높고 습도가 많은 곳에서 한데 모여 산다. 뿌리에서 뿌리로 번식하는 야생화라 그렇게 함께 기대어 산다. 범부채의 뿌리와 줄기를 사간이라고 부르며 인후증과 편도염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8~9월의 검은 씨는 눈에 별이 보이거나 침침하면 잘 달여 눈에 바르거나 먹으면 별이 없어진단다. 검은 씨로 검은 눈동자를 회복시킨다는 옛말은 그렇게 소원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꽃잎에 검은 반점은 범 모습을 닮아서 지어진 이름으로 생각된다. 우리 야생화의 이름들은 추상적인 꽃말이 아니다. 생활 속에서 붙어진 이름들이 많다. 이 야생화도 붓꽃과다. 붓꽃과 마찬가지로 범부채의 꽃망울이 붓을 닮았다.


긴 장마에 큰 물줄기를 보아야 나타나는 범부채 꽃. 얼마나 많은 잔 뿌리로 물을 퍼 올려야 꽃이 될까.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 경험해 왔듯이 행복했던 일들은 단시일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변함없는 우정도 그렇고 새 언어를 배우는 데에도 그렇고 악기를 다루는 데에도 마찬가지다. 이들과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소통이 될까.


꾸준히 쌓이다 보면 통하는 게 맞다. 범부채 꽃은 계절을 이어가면서 햇빛과 물을 온 몸에 쌓이고 흐르게 했다. 세상의 속도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속도에 스스로 그 가치를 구현해나가는 데에 행복이 있다. 생의 속도는 그리 빠르게 가지 않는다.
느린 발걸음이지만 한걸음씩 나아가면서 또 한걸음으로 이어질 때 그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음미할 필요가 있다. 불현 듯 장맛비에 나타나는 범부채 꽃. 실개천에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강물을 지나 바다가 된다. 또 얼마나 더 기다려야 부채꽃잎에 투명한 빗방울 볼 수 있을까요. 한 바퀴 돌아오는 삶이 한참 뒤에야 볼 수 있고 못 볼 수도 있겠지. 그건 알 수 없는 세상. 인내 하며 기다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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