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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월 다독이며 세상을 부드럽게 이해하는 여인같은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1.07.2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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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햇살 가득한 가운데 하얀 빨래가 파란 하늘을 더욱 더 새롭게 한다. 장독대 옆에 몇 개의 채송화가 어머니의 마음을 닮았다.
나이가 들수록 빨간 꽃을 좋아하는 어머니. 젊었을 때 가슴앓이가 붉은 열정으로 변해가는 세월.


이제는 붉은 장미보다 더 붉은 채송화 꽃으로. 접시꽃보다 더 큰 사랑으로 변하고 싶다고. 세월이 가면 마음도 변하다고 하던데 세상의 짐을 다 지고 가려면 붉은 꽃을 마음속에 지녀야 한다고 한다.
마당이 아무리 넓어도 채송화가 피어 있으면 좁아진다. 키가 작고 작은 꽃이라도 마음에 피는 꽃은 그렇게 크게 핀다. 이제 빈집에 잡초만 무성하게 피어있다. 벽장에 낯익은 글씨들.

 

이들도 이제 육십 세에 이르렀다. 마당에 언제나 하얀 빨래를 휘날리던 세월을 미련 없이 흘러버렸다. 집 앞 뜰이 넓을수록 빨간 채송화로 피고 싶어 하얀 빨래가 휘날린다. 어머니 마당에 하얀 옷이 항상 채워져 있던 사랑은 아직도 7월의 햇살 아래 뽀송뽀송하다.


장독대 옆에 채송화는 이른 아침부터 이슬을 머금고 오늘 하루를 무사하기를 기도한다. 채송화 꽃잎은 연약하다. 7월의 하늘 아래 하루 내내 피지 못한다. 느린 오후에는 꽃이 시들고 만다.
그러다가 새벽에 다시 핀다. 오전에 장독대에서 어머니와 마주치면서 새벽에 다시 핀다. 한해살이 쇠비름과 속하는 이 꽃은 여름 꽃으로서 귀엽다. 한번 심어놓으면 씨가 떨어져 다음 해까지 이어진다. 마당에 잡초는 뽑은 어머니. 하지만 채송화는 그냥 놔둔다. 밭에 쇠비름은 꽃이 아주 작다. 그런데 마당에 채송화는 아주 화려하면서 귀엽다.


모든 야생화들이 여인의 곁으로 오면 이렇게 예뻐지는 것일까. 어머니 곁에서 피는 꽃들은 다 붉다. 오월에 작약 꽃도 그렇고 6월의 장미도 그렇다. 푸른 7월 하늘 아래 빨간 접시꽃은 파란 하늘 밭에 꽃을 피워놓은 듯이 어머니가 닮고 싶은 열정이다. 녹음이 짙어가는 계절은 그리움의 초상이다. 나이가 들수록 파란 하늘을 자주 올려 보고 멀리 산들이 겹쳐있는 풍경을 본다.


염전에 하얀 소금을 보면서 지나온 세월을 새롭게 쓰고 싶어 한다. 멀리 수평선에서 만난 사람을 영원히 만날 수 없기에 그냥 그대로 추억이 되고 싶다. 집 마당에 채송화는 파란 하늘의 흰 구름 또한 어디로 떠나고 싶은 나그네의 마음이다. 풍채는 작지만 온갖 상상력을 불려 일으키는 꽃이다. 아담한 뜰에 채송화가 있는 집을 좋아한다.
하얀 빨랫줄에 하얀 아이셔츠가 파란 하늘 가운데에 바람이 지나간 흔적을 사랑한다. 한 여인의 모습이 보인다. 다섯 여섯 개의 장독 옆에 몇 그루의 채송화는 한세월을 다독이면서 세상을 부드럽게 이해하는 여인. 그러면서도 붉은 마음으로 피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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