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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굽이 돌아가다가 너를 만남으로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1.08.13 13:25
  • 수정 2021.08.20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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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걷기. 분주하지 말기. 복잡한 것은 단순화. 오늘 오감이 작동하는 데에 감사할 것. 이 모든 것들은 직접적인 가치는 없을지라도 이것을 통해 즐거움을 얻게 된다.
반드시 꽃을 봐야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꽃을 봄으로써 마음을 새롭게 다질 수 있다. 느린 걸음으로 걸어야 꽃이 보인다. 더 정확하게 보려면 멈춰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눈을 감고 명상에 젖는 것도 태곳적 없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것으로 채워질 터이니 말이다. 내가 머물고 있는 집도 영원한 집이 아니다. 오늘도 집을 나서고 길 위에서 천천히 걷는다. 오감은 시간에 따라 늘 변화라고 한다.


그러면 너의 집은 천천히 지어질 것이라고. 10여 전에 밭둑에다 심어 놓은 신선초가 스스로 변화하여 꽃이 피었다. 땅에서 돌려나는 잎은 단풍잎처럼 생겼다.
어느 날 갑자기 꽃대를 올려 선선한 가을바람을 기다리고 있다. 신선초는 명일엽, 선립초, 선삼초 라고도 한다. 아열대지방에서 해안가에 자생하는 미나리과의 식물로 여러해살이 초본이다. 잎을 자르면 바로 새싹이 나올 정도로 잘 자라기에 명일엽이라 부른다. 암을 억제할 수 있다고 하여 텃밭에 많이 심는다.


여러해살이 꽃 중에 제법 키가 크다. 가을 나그네가 길을 떠난 모습이다. 크기는 훨씬 크지만 아주 작은 취나물 꽃과 같다. 몇 개 안된 꽃잎 속에 못생긴 꽃잎이 하나둘씩 끼어있다. 취나물 꽃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이런 꽃들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정갈하고 정밀한 꽃잎은 마음이 끼어 들어갈 틈이 없다. 그런데 신선초 꽃은 소소한 데에서 그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 맑은 하늘이 채워지고 시원한 바람이 지나갈 자리가 그도 역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걸까. 어느 목적지를 두고 걷는다면 나를 간절히 기다렸던 꽃들마저 볼 수가 없게 된다.


천천히 굽이 돌아가다가 너를 만남으로 즐거움을 찾았던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 신선초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산다. 여러 송이가 한데 모여 있으면 인간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사람들 키만큼 자라 손을 잡을 듯하며 함께 길동무를 하고 싶단다.


시간은 등속운동을 하는 것처럼. 그러나 우리는 가끔 끊어진 길 위에서 잠시 고민에 빠질 수도 있겠지. 내가 가질 수 없는 가치를 꼭 가지려고 하지는 않는다. 비어있는 공간에 새로운 하루가 채워질 수 있을 터이니. 여러 송이가 하늘을 채워 넣는 일에도 새롭게 쓰라는 뜻도 있겠지. 일상에서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천천히 길을 떠난다. 그리고 나그네가 된 마음으로 노란 꽃을 유심히 보고 다음번에 어떤 꽃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생각하면서 구불구불한 서정의 길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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