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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모래 언덕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

정지승의 완도, 어디까지 가봤니?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1.08.20 13:52
  • 수정 2024.01.16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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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문턱에 성큼 다가섰다. 조석으로 제법 쌀쌀한 기운이 감돌고 길섶에서는 ‘찌르르’ 풀벌레 소리가 짙다. 팬데믹으로 제동이 걸려 답답하던 중, 해거름에 걸어보는 명사갯길은 몸과 마음을 한껏 가볍게 한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만난 해변 풍경은 여유롭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에 발 담그고 해변을 서성이며 조개 줍는 사람, 모래성을 쌓는 아이들, 그 해맑은 웃음을 뒤로하고 습하고 무더웠던 여름이 벌써 작별을 고한다. 

울모래에 올 때면 명사산이 먼저 떠오른다. 명사십리 이름 때문이다. 중국 돈황시 남쪽으로 5km 떨어진 곳에 있는 모래와 암반으로 이루어진 산 이름인 '명사(鳴砂)'는 언덕의 모래들이 바람에 굴러다니면서 내는 소리가 마치 '울음소리 같다'는 데에서 유래한다. 명사산은 서역이 시작되는 실크로드의 관문으로 황금 모래사막이 바다처럼 넘실거리며 산을 이룬다. 그곳에는 2천 년 동안 마르지 않은 샘이 솟아나 그 절경이 사람들을 부른다. 

청해진의 장보고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해신(海神)에서도 중국의 명사산이 소개된 적 있다. 신라의 백성들이 노예로 팔려 가는 현장을 목격한 장보고가 그들을 구출한 장면이 각인된 곳은 명사산의 사구였다. 그곳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며 죽어 간 원혼의 울음소리가 명사의 전설이 되어 전한다. 그 소리는 한 맺힌 절규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완도 신지도의 명사십리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신지도에 유배 온 사람들의 절규, 그중에서도 왕가의 자손이던 이세보의 뼈아픈 절규가 십리까지 들린다고 비유했다.

명사십리 해변에 가면 정말로 그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일까? 그것이 궁금해서 한 방송사의 예능프로그램이 실험했다. 그 결과 입자가 고운 모래는 사람들이 걸을 때마다 미세한 진동과 울음소리를 토해낸 것으로 밝혀졌다. 해변의 미세한 모래 입자는 사람들이 걸을 때 공명현상이 나타난다고. 

명사십리 모래는 곱고 미세하다 . 해변에 들면 마치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갓난 아이를 안전하게 품어주는 어머니 품속 같은 느낌이 든다.  바위 절벽에 부딪히는 파도는 산산이 부셔져도 모래 해변은 세찬 파도를 부드럽게 잠재운다.

이 계절, 해변에는 보랏빛 들꽃이 하나둘씩 핀다. 순비기꽃이다. 사시사철 잎을 뻗고 여름의 끝자락에 꽃을 피워 내는 순비기는 언제부터 뿌리를 내렸을까? 해변에 납작 엎드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틈에 무성히도 자라고 있다. 

“머리 아프고 골속이 울리는 것과 눈물 나는 것을 낫게 한다. 몸속에 기생충을 없앤다. 이빨을 튼튼하게 한다. 눈을 밝게 하고, 머리털을 잘 자라게 한다. 뼈마디가 저리고 쑤시는 습비(濕痺)로 살이 오그라드는 것을 낫게 한다. 술에 축여서 찌고 햇빛에 말린 다음 짓찧어서 쓴다.” 순비기나무는 동의보감에 그 쓰임이 널리 알려졌다. 그 외에도 민간요법으로는 열매를 가을에 채취하여 햇볕에 말린 다음 베개에 넣어두면 두통에 효과가 있으며, 잎과 가지에는 은은한 향기가 있어서 입욕제로 사용하기에 좋다고. 

물질할 때 해녀가 숨을 참고 들어갔다 나오면서 길게 내쉬는 숨소리를 ‘숨비소리’라고 한다. 순비기나무는 해안지방에 주로 서식하는데, 해녀들은 이 식물을 '숨비기나무'라고 부른단다. '만형자'라는 순비기나무 열매는 잠수병으로 인한 만성적 두통을 치료하는 데 사용했다. 순비기는 해녀에게는 유용한 식물이다. 모래 땅속 깊이 뿌리가 뻗어나가며 세찬 바람에 해변의 모래가 날리는 것을 막아준다.

순비기나무 약효와 효능, 관련 연구 목록과 학계의 논문도 많다. 여러 가지 실험 결과를 밝힌 해외논문까지 있을 정도라고 하니 신통방통한 식물임이 분명하다. 

 

예전에는 여름철 모래찜질이 신경통과 관절염, 각종 피부질환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 사람들이 찾았다. 근래에는 기업의 단체휴가지로 하계휴양소를 설치하여 이용하기도 한다. 백사장을 포함한 명사갯길 따라 해안풍경을 조망하는 것도 권해봄직하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1980년 지정된 것이 지난 2004년 해제됨에 따라 완도군은 신지해수욕장 일대에 기반시설과 편의시설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춘 휴양시설로 단계적으로 개발했다. 

그리고 정부가 선택한 전국 4개 지자체 중 가장 먼저 해양치유센터를 건립중이다. 그동안 해양치유를 위해 준비한 것 중 대표적인 것이 노르딕워킹과 필라테스이다. 이 운동은 몸의 균형을 바로 잡아주며 유연성 향상, 기혈 순환을 도와주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도움을 된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운동하면 젖산 농도의 수치가 낮게 나타나며 기관지에도 좋다고.

완도군은 2020년 7월까지 해양치유 프로그램실, 건강 측정실 등의 시설과 20여 종의 테라피 시설을 갖출 계획이며, 치유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하여 새로운 웰니스 관광 흐름을 이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시설 위주의 사업이라며 염려도 하지만, 이제는 군민 모두의 관심과 참여 그리고, 단계적 사업의 준비가 더욱 필요한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정지승 문화예술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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