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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때 만난 여학생과 일편단심, 다음달에 할아버지 됩니다

자신의 천공에 자신의 태양을 빛내려는 결기 '김양훈'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21.09.17 12:45
  • 수정 2021.09.1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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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천공에 자신의 태양을 빛내려는 결기.
그 정열은 눈의 빛남이 되어 나타나고 눈에 빛남이 있는 그는 대양으로 향하며 그 빛남의 진실로 말미암아 쉼없이 전진하게 하고, 그 본질의 힘은 무엇도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못하게 하리라.


눈빛부터 부리부리한 모습이, 한 성깔할 것 같은 모습의 완도군의회 김양훈 의원.
상당한 식견과 본질에 접근하는 말을 하는 김 의원을 보면서   "시골 촌놈인지 알았는데 정말 대단하다"는 말을 곧잘 해줬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충혼이 빛나는 고금도 출신인 김양훈 의원이 어느 해 남해를 찾았을 때, “노량에서 순국 후 충남 아산의 본가로 운구되기 전 노량나루 근처에 6개월 동안 1차 매장되었다”는 안내표지를 보고서 불같이 화를 내며 당장 그곳 담당자와 해설사에게 고금도 월송대 사진을 보여주며 이순신 장군의 시신은 83여

 

일을 고금에서 머물다 충남 아산으로 옮겨갔다고 시정을 요구했다는 말을 들었다. 
박준영 전 도지사가 고금도를 찾아왔을 때도 늘 안타까워했던 게 83여일의 그 여. 문헌에는 없고 구전으로 전하는 그 여 때문에 더 큰 문화재로 지원받지 못한 안타까움을 표했는데, 군의회에선 완도역사 아카이브(기록 보관소)를 구축하자는 5분 발언으로 의식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며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강진농고를 다녔다고 했다. 
학창시절엔 시쳇말로 껄렁껄렁했다고도 했는데 학생회장 출마 경험도 있었다고. 회장이 됐냐고 물으니, 학생주임이 나서 너는 완도에서 유학왔으니 회장은 강진 토박이에게 주자고 했단다.
고교  3학년 때 공무원 시험도 치뤘다고 했다. 농림직 9급 시험도 봤는데, 떨어지고 진학을 꿈꿨지만 집안에선 형을 가르쳐야 한다고 해 더 이상 학업은 이어가지 못했다. 고 3때 취업 전선으로 뛰어 들어 해남서 포크레인 기사로 일하다가 1989년 12월 매형에게서 독립하며 26년 간 이어왔다는데, 해남서는 4년여 살다가 부모님 건강이 좋지 않아 고향으로 내려오게 됐다고.


양식은 줄돔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고기의 습성도 모르고 경험도 부족해 13억원이란 돈을 홀라당 까먹고 밑바닥까지 같다고.
사채까지 쓰면서 악전고투했지만 안되더란다. 그래서 양식 현장까지 통째로 넘기려고 했다고. 그때 자신의 끝을 가 본 것 같다고 했다. 


김양훈 의원은 “모든 건 끝을 가봐야 한다. 사람은 끝을 가봐야 만이 비로소 진면목을 알게 된다. 그 끝을 가기란 너무 힘들지만 그것을 벗어났을 때 비로소 겸손 또한 알게 된다”고 했다.  "사랑을 하는 일에도 겸손해야 한다"고. "오늘도 운명처럼 이어온 생명을 바라보는 데에는 끝없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콘크리트 사이에서 간신히 생명을 이어 온 야생화는 우리 눈엔 흔한 들풀이지만 그들에겐 막 배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지금을 산다. 그리움 속에 슬픔은 얼마나 더 견뎌내야 하는 것일까. 이것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이라면 더 견뎌내야 한다는 것" 밑바닥에서 그걸 배웠다고.
지금 광어는 시세가 괜찮은데, 살림이 핀 것은 6~7년 전부터 였으며 지금은 아들이 현장을 물려받았다.

 

 


몇 살이기에 현장을 물려 받았냐니, 아들의 나이는 스물 일곱이란다. 큰애냐?고 물으니, 큰 딸은 서른 현재 아이를 잉태하고 있어 다음달엔 할아버지가 된다고 했다.
언제 결혼을 했냐고 하니, 잠시 웃으며 지금의 아내가 첫사랑이란다. 고교 1학생 때 영암 독천 친구집에 놀러가서 윗집 여학생을 보게 되었는데, 정말이지 마음이 불에 데인 것처럼 확 들어오더란다.

 

 

일편단심으로 불같이 사랑했고 지금까지 단란한 가족을 이어오고 있는데, 고금도에선 아내 강민희 씨가 더 인기가 좋다고. 자신과 아내가 함께 선거에 나가면 아마 아내가 당선될 것이라며 너스레를 친다. 오랜 봉사활동 때문이라고 했다. 지역 주민과의 호흡이었다고. 무투표 당선이 되고 처음엔 얼떨떨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부담감이 밀려왔다고 했다. 고금면의 경우, 예로부터 큰 인물들이 많아 어린 나이에 건방지다는 소리 안듣기 위해, 또 실망감을 안주기 위해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고.

 


기억에 남는 일은 이도재 공의 생가 삼학상회에서 세를 살 때도 참 좋았고 전남도체육회 육상경기연맹 회장을 역임할 때 전국제전과 소년체전에 전남도 대표 선수들과 함께하며 방송도 탔을 땐데 노화 출신 백승호 국가대표가 부산에서 임진각까지 구간 마라톤대회에서 우리나라 구간 기록을 세울 때, 차로 따라 다니면서 응원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지난 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으로 의회에 입성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의정활동은 무엇이었는가?를 묻자, 김양훈 의원은 "지역민들께서 무투표 당선이라는 마일리지 포인트를 청구하신 것 같다. 저에게 기대하는 바가 의정으로 실현되었을 때 마일리지가 쌓이겠지만 반대인 경우 도리어 차감되는 것이기 때문에 차곡차곡 마일리지를 적립하듯 의정의 디딤돌을 쌓을 것이라는 다짐을 이 자리를 빌려 말씀드린다"고.

기억나는 의정활동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기업형 돈사 건립을 무(無)로 되돌린 일련의 일들이 아닐까 싶은데, 돌이켜 생각해도 지역 간 갈등 야기와 행정에 대한 불신 심화 그리고 위로부터 물려받은 삶의 터전을 되물려 줄 수 없을지 모르는 우려 등은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고. 

 

 

제도권 안에서 보는 행정과 제도권 밖에서 보는 행정은 어떻게 다른가를 묻자, 김 의원은 "제도권 안과 밖이 분별된 삶을 살지 않기 때문에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제도권 밖에서 저 역시 민의의 주체이고 의회에서 그 민의를 모아 의정을 실현해 나아가는 것이기에 ‘현장에서의 가치를 제도화 하는 것’, 다시 말해 제도권 안과 밖의 합치를 이루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정치이고 의정이다"고.
또 지역이 선순환되려면 주민의 지방자치역량이 강화되어야 하고 신뢰와 협력의 사회적 자본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는데, 행정적 측면에서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을 보완해야한다고 보는가?에 대해선 주민주권 속 새 자치시대가 도래했다는 김 의원.


몇몇 일방향적인 행정으로 인해 신뢰를 잃었던 사례를 보았듯 행정은 충분한 소통과 주민수용을 기반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의회도 이 부분에서 역할이 있기 때문에 민의가 잘 전달 될 수 있도록 열린의정을 실현하겠다고 전한다.


현 신우철 군정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고 이에 대해 김 의원은 어떤 대안을 제시하겠는가?묻자,  김 의원은↳“지속가능한 미래 완도를 위한 동력은 무엇이고 추진전략은 작동하고 있는가라는 우려하는 물음이 있다.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숲을 봐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나 당장 발 아래 가시덩굴이 있다고 해서 큰 걸음으로 넘어가려 한다면 뒤 따라올 작은 걸음들은 가시에 상처 입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지역소멸위기·저출산·초고령화 등과 같은 지역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생산가능인구가 감소되는 축소사회에서 완도군의 생존전략은 해양치유라는 먼 숲만을 바라보는 것인가라는 우려다.

가시덩굴을 제거하듯 1차 산업에 노동집약적인 구조에서 벗어나  관광·치유·제조·가공 분야로 산업을 다각화하고 이제는 출산과 육아 분야도 감수성이 기본이 되는 정책을 마련해 위드코로나 시대를 선점할 수 있는 완도만의 시책 등으로 지속가능한 미래 완도에 대한 확신을 군민에게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창천항로를 희망하면서 할아버지를 되었음을 무지 축하한다.


김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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