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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무게로 휘어져 둥글게 영그는

신복남 기자의 ‘어젯밤 어느 별이 내려왔을까?’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1.09.17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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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의 풍경은 계절 중에 가장 섬세한 얼굴이다. 중후한 첼로 음률 하나만으로 여러 마음으로 갈라놓는다. 그것은 내 마음 속에도 이미 가을이 들어섰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가을의 얼굴은 겸손이다. 


여름에 독을 품고 원수를 만들었던 얼굴은 이제 겸허한 길로 들어선다. 미움도 지나고 나면 그것이 나의 인생에서 필요한 것이라는 걸 가을의 얼굴을 보면서 알게 된다. 


사랑이란 얼굴도 멀리서 바라볼 때만 아름답게 보일 수 있겠지만 매일 살을 비비고 산다면 어려움이 한두 가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 계절은 또다시 오지는 않을 것인데, 너무 즉흥적이고 머리만 앞서다 보니 세월이 더디게 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초가을 얼굴도 열심히 햇살을 담고 날마다 변해만 간다. 그리움의 무게는 점점 굵어지고 가을 하늘은 점점 높아만 간다. 계절 음식처럼 계절에 따라 마음의 색깔도 각각 다르다.  냄새  또한 사뭇 다르다. 


모두 초록에서 이젠 자기만의 색깔을 쌀쌀한 공간에 그려 넣는다. 조용한 피아노 선율도 알알이 박혀가는 가을의 얼굴을 더욱 빛나게 한다. 가지가 너무 휘어져서 그리움이 벅차 그 기쁨을 느낄 겨를도 없다. 복숭아는 3년, 은행은 4년, 배는 5년 길러야 열매를 얻는다. 그러나 대추는 그해에 돈을 만들 수 있다고 옛말이 있을 정도로 유익한 나무다. 게다가 각종 보약에도 빠지면 안 될 정도로 꼭 필요한 약재다. 


정신안정과 불면증 그리고 신진대사를 촉진시킨다고 한다. 결혼 폐백에 밤과 대추를 신부의 치마에 부모가 던진다. 대추는 건강하고 자손을 번창하라는 뜻이고 밤은 한 송에 3개가 들어있어 이처럼 세 형제를 잘 낳아 기르라는 뜻이란다. 추석이 다가오면서 멀리 뵈는 뫼들이 깔끔하게 단장했다. 눈 앞에선 대추가 주렁주렁 익어가고 있다. 모든 세상이 둥글게 영글었으면 초가을 날씨처럼 평화로울 터인데. 어쩌면 자연은 자유로운 영역이므로 한 개인의 마음도 다스리게 만든다. 


오늘은 어제의 내가 아니라 또 다른 세계를 향해서 한 지점에 서 있다. 그리움이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다. 나보다 먼저 떠나가고 있고 내 안에서만 조용하게 앉아 있음도 아니다. 


저 멀리 수평선을 향한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의 지점이다. 가지가 휘어진 그 풍요로움은 누군가를 보고 싶은 마음이다. 고향에 대한 향수도 탄탄히 영그는 풍족함이다. 대추는 다산을 상징한다. 며느리 치마폭에 대추를 넣어준 마음은 자연의 풍성함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한번 만나고 헤어진데서 그리움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수없이 주고받은 풍성함에서 마음이 끌리게 되는데,, 이것이 정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가을 볕이 대추를 알알이 살을 찌우고 있다. 내 그리움의 무게가 휘어지도록 둥글게 영글어 간다.  

   
 신복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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