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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신문과 김정호 대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데스크칼럼 외전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1.09.17 13:27
  • 수정 2021.09.1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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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신문을 떠나기 전, 김정호 대표에게 말하길 “신문이 어려워지면 언제든 다시 오겠다”였다.


마음 속에선 다시는 볼 일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다시 오겠다고 한 건 의(義)였다.
천성이 온후하지 못해 인(仁)은 펼칠 수 없지만 의지의 표상인 의(義)만큼은 인간의 의지와 신념으로 가능한 일이기에. 그 의(義)가 완도신문과의 의(義)인지 아님, 김 대표에 대한 의(義)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데스크에서 책임(기간)을 다하고 스스로 내려오는 길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이다. 
그가 누구든 아무리 유능하고 그 자리에서 제 아무리 힘을 내려놓는다 하더라도 데스크란 하나의 권력, 자질과 덕성의 유무와 상관없이 자리에서 내려오는 건 언론권력에 대한 자기 성찰의 증명이다.


그 어떤 기자라도 그 길을 걸을 수 없다면 헛되고 헛된 길을 갈 뿐. 아마, 김정호 대표가 데스크에서 내려온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데스크로 복귀해 김정호 대표에게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아마도 다른 길을 가면서 김신 전 의원을 도왔을지 모르겠다. 김 전 의원과 먼저 맺은 인연이 있다. 하지만 이곳에 온 이상 언론인의 본질을 따르기에 김 전 의원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더 이상 돕지 못하게 됐다”고 전했다.


또 “당신과 완도신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할 시기가 온다면 완도신문을 선택하겠다”  
“그것은 당신의 뜻이기도 할 것이다”고 전했다.


그랬더니, 김 대표 또한 수긍한다. 그건 언론사 대표는 선주이고, 데스크는 선장이기 때문인 것이다. 어디, 선장이 배를 버리는 걸 보았나! 그런데도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배를 버리고 떠난 선장을 숱하게 봤다. 물론 떠난 그들이 고작 하는 일이라곤, 자기가 몰던 배에 돌을 던지는 일이다.  물론 던질 수도 있다. 누구도 완벽한 중(中)의 상태에 이르지 못하기에 비판받고 비판해야하는 것. 곧 언론의 자유다. 그럴지라도 선장은 마지막에 배에서 내리는 사람이라 결코 배를 버릴 순 없는 일.

배를 버리고 떠난다는 것, 그것은 쪽팔린 일이다. 그것은 이미 데스크로서의 실격이다. 그런 삶으로 또 다른 삶을 살아도 결국은 하류이고, 그 하류 속에서 사는 것은 그들의 운명이다.


복귀한지는 9개월 째, 처음 복귀했을 때 들은 소문은 김정호 대표가 신우철 군수의 최측근이란 소문. 


그런데 "아우, 진짜!" 최측근이라면 신문사가 이렇게 어려워도 돼? 그래서 시작한 게 구독자 확보 운동이었다. 신문사 상황을 보니 직원들은 모두 나가고 김정호 대표 혼자 띠지를 잘라내고 지로영수증 발부, 생활광접수 받고 편집에 필요한 타이핑 작업까지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편집국 일은 어마어마하게 고되다.
붉은 태양이 푸른 바다 속으로 녹아 들어가는 순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염에 휩싸여 욕망과 탐욕이란 독소를 걸러내려는 건 본질의 정수만을 간직하기 위해, 지옥에서 한철을 보내는 듯한 초인적인 힘이 필요한, 말할 수 없는 고역의 순간이다. 그러니 미치도록 말을 잊었다.


그런데 마음은 편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눈치 볼 기자들이 없어서. 편집국장의 처신은 자신의 옳고 그름을 떠나 경영적 측면에선 대표의 말을 따라주고 취재적 측면에선 기자의 말을 따라주는 것이 기본인데, 복귀 전 완도신문 데스크 재임시절엔 사주인 김 대표보다도 기자의 눈치를 더 봤던 것 같다.


데스크로 초임 기자들에게 한결 같이 말했던 건, “기자의 글은 시처럼 수필처럼 소설처럼 쓰면서 맨 마지막에 비평을 둬야 한다”고 했다. 편협된 시각, 한정된 글에서 벗어나라는 은유적 표현인데 지금껏 알아 먹는 기자는 없었던 듯하다.


1천 번의 편집 동안 인연을 맺었던 기자들은 대강 20명 안쪽, 역시나 선현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비인부전 부재승덕(非人不傳 不才承德 사람됨에 문제가 있는 자에게 벼슬이나 재능을 전수하지 말며, 재주나 지식이 덕을 앞서게 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을 실감한다. 


바람이 있다면 완도신문을 위해 진짜 제대로 된 재목을 만나 데스크의 바통을 이어주는 것. 


그리고 “당신과 완도신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할 시기가 올 때, 완도신문을 선택하겠다”는 말은 수정하기로 했다. 아내와 완도신문 중, 신이 택하라면 아내를 버리겠다는 그의 말은 일점집중, 마지막 하나를 위해 모든 걸 버릴 수 있다는 신문에 대한 집념이다. 그런 점에서 완도신문과 그는 누가 먼저이고 누가 나중이 아닌 완벽한 일체이고 하나였다.  

 
김형진 본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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