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완도의 황장목, 나라와 백성 어떻게 구했나 (1)

정지승의 완도, 어디까지 가봤니?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1.10.01 14:49
  • 수정 2021.10.12 00:12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명이요~”

막걸리를 뿌리고 나서 나무를 향해 큰 소리로 외치면 벌목꾼의 도끼질 몇 번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쓰러진다. 이어서 건조장까지 헬기공수작전이 벌어졌다. 숭례문 복원 때 금강송이라 부르는 황장목(黃腸木) 베어내는 작업을 전통방식으로 재현한 것.

 

지난 2008년 국보 1호 숭례문 화재 때 금강송 166본을 숭례문 복원사업에 사용했다. 2001년에는 경복궁 근정전 보수공사에 226본, 2005년 낙산사 원통보전에 36본, 2007년 광화문 복원에 26본을 산림청이 공급했다. 

 

이후,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건조한 목재를 숭례문 복원에 사용해 이것이 국내산 소나무인지 러시아산인지 진위 논란으로 뜨거웠다. 그래서 6년 동안 전국 60곳에 분포한 소나무 DNA를 분석하여 국립산림과학원이 언론에 공개하면서 황장목(黃腸木)은 일반에 널리 알려졌다. 


이때, 국내 서식하는 소나무는 크게 4가지 유전적 특성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규명했다. 눈으로는 식별이 어렵지만 유전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것. 수종 전체를 대상으로 한 유전자 분석은 소나무가 처음이었다.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고 지구온난화로부터 소나무를 지키기 위한 목적이 컸다고 한다. 


그렇다면 상왕산과 완도 섬 곳곳에 보이는 붉은 표피의 소나무, 특히 이순신의 수군 본영이던 고금도 소나무는? 역시 황장목이다. 시대를 더 거슬러보면 상왕산 황장목으로 상선을 짓고, 붉가시나무로 노를 만들어 대양을 누볐던 그때 청해진은 국제교류장이었으니 완도산 황장목과 붉가시나무를 사용한 역사는 유구하다. 


 완도는 상선과 군선을 건조하는 황장목이 확보된 곳. 따라서 군선이나 세곡선 등을 만든 선박건조기술자인 배무이도 넘쳤다. 숲이 무성한 당인리는 나무를 베어서 국가에 바친 일이 많았다. 그런데 첨사는 군선 제조를 빙자하여 날마다 주민들을 동원시켜 국유봉산(國有封山)의 황장목을 베어 진의 선소에 거두어 들였다. 이를 상선으로 지어 팔아 사복을 채운 일로 민요가 일어나기도.

 

일반인이 출입 벌채 때, 곤장 100대

 

황장목이 있는 곳은 일반인의 벌채는 물론 군락지 출입도 제한했다. 경차관이라는 관리까지 파견해 지켰던 것. 황장목은 조선시대 궁궐을 짓거나 임금과 왕세자의 관(棺)을 만들 때 주로 사용했기에 국가에서 철저히 보호했다. 백두대간 따라 금강산, 강릉, 삼척, 울진, 봉화 일대가 주산지다. 조선 숙종 때부터 황장봉산(黃腸封山)으로 지정해서 관리했는데, 울진 소광리의 대광천 상류에 있는 황장봉계표석에는 일반인이 출입해 벌채하면 ‘곤장 100대의 중형에 처한다’는 글귀가 새겨져 그때 상황을 짐작케 한다.


원래는 황장산 소나무를 황장목이라 했지만 국가에서 우수한 소나무를 여러 산에 이식, 장려하여 황장목으로 구분했다. 조선시대 전국 황장목 군락지에 지정한 황장금표는 모두 60개, 숙종 때 설치한 것으로 알려진 황장금표는 주로 강원도와 경상북도 일대에 집중했다. 표석이 발견된 대표적인 곳은 치악산 일대. 이곳은 황장목 군락지 보호를 위해 입산 금지하고 황장금표를 설치했다.

치악산에 3곳 있다. 그것을 기념하려고 치악산이 있는 강원도 원주에서는 매년 황장목 숲길 걷기 행사를 연다. 구룡사 입구 새재 마을 진입로에는 첫 번째 황장외금표가 있다. 치악산은 황장목이 많아 이중삼중으로 경계 표시판을 설치했던 것이다. 


두 번째는 구룡사 일대 주 진입로에 설치했다. 세 번째 황장금표는 치악산 비로봉에서 최근 발견했다. 치악산 꼭대기까지 경계판을 설치해 황장목 보호에 총력을 기울인 것. 전국에서 황장목 보호를 위해 한 지역에 3개의 경계판을 설치한 유일한 곳이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 왕가의 나무

 

금강송이라 부르는 소나무는 색이 붉어 적송(赤松), 늘씬하게 뻗어 미인송(美人松), 일제강점기 때 봉화의 춘양역에서 운반돼 춘양목(春陽木), 속살이 황금빛을 띠고 있어 황장목(黃腸木)이라 부른다. 다른 이름을 일제의 잔재로 여겨 '황장목'으로 통일해 부르자는 여론이 뜨겁다. 경북 울진군 서면은 금강송이 유명해 행정구역을 아예 금강송면으로 바꿨다. 산림청이 조성한 금강소나무 1호 숲길이 있다.  


숲길은 조선시대 숙종(1674∼1720) 때부터 관리한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와 십이령 옛길을 품고 있다. 숙종은 소나무를 보존하려고 황장봉계 표석을 세우고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했는데,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장군터 인근에 그 표석이 있다. 


'살어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을 간다'는 황장목은 한국이 원산지. 일반 소나무와 달리 재질이 단단하고 굵고 길며 잘 썩지 않아 지금도 유명 사찰이나 고궁을 복원하는 데 사용한다. 

청해진과 가리포진, 옛 영화가 숨 쉬는 곳

 

완도는 황장목으로 배를 만들던 배무이와 붉가시나무로 숯을 만든 숯 장인이 있다. 마광남, 정무삼 두 어르신인데, 후계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옛 것을 찾지 않은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두 분을 만나 뵈었더니 '황장목'과 '붉가시나무'에 관한 설명을 한다. 말씀을 듣고 보니 어느 지자체는 우리의 전통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큰데, 이곳은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지역의 자원이 점점 잊혀진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읍내를 걷다보면 눈에 먼저 들어오는 곳이 있다. 완도의 랜드마크인 주도인데, 사람들은 주도를 하트섬이나 새로운 모습으로 자꾸만 표현하고 싶어 한다. 감성적 관광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주도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지정학적, 식물학적, 생태학적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기보다는 마냥 보기 좋은 것만을 추구하는 감성주의에 집중된 것이 요즘 추세다.


주도에 둥지 튼 왜가리 가족, 그 옆으로 아름드리 자태를 드러낸 소나무 하나가 인상적이다. 그것을 보면 주도가 마치 생물다양성의 표본처럼 느껴진다. 이곳은 살아 숨 쉬는 모범적 생태자원이다. 상록수림에 침엽수가 공존하는 것은 흔치 않다. 그런데도 주도 상록수림 식생 중에는 황장목 두 세 그루가 완도군의 상징처럼 자라고 있다. 청해진과 가리포진의 옛 영화가 다시 살아나는 듯하다.        

                                                               
                       

정지승/다큐사진가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