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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천처럼 휘날리는 물결이 감미로운 순간, 화가는 붓을 들어

제40회 대한민국 미술대전(국전) 우수상에 빛나는 김진자 화가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21.10.08 15:39
  • 수정 2021.10.0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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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그림을 보고 있다가 살며시 눈을 감고 그림에 귀를 기울이면, 돌샘 사이로 졸졸졸 맑은 물소리가 흐른다.
음악으로 치면 비발디의 사계에서 봄을 듣고 있을까? 
바람소리와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 봄비 소리에 천둥치는 소리, 송사리 떼가 이리저리 노는 듯한 음표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저 대기와 산과 벌판 사이를 떠다니는 봄의 생령이란. 겨울이 낳아 준 환희의 아가, 소곤소곤 봄이 기지개를 켜듯이 재잘재잘 물소리가 흐르는 그림. 


어찌보면 사랑하는 젊은 연인이 서로를 쓰다듬고 부드러운 속삭임을 주고받다, 모퉁이 바위에 부딪힐 때면 티격태격하다가도 돌아나올 땐 언제 그랬냐는 듯, 이내  환하게 번져오는 연두빛 봄의 이파리처럼 피어나듯이. 그 부드럽고 매끄럽기 그지없는 봄의 살결은 어떻게 일어났을까? 

비단처럼 휘날리는 물결이 감미로운 순간에 화가는 붓을 들었다. 아니, 붓이 화가를 이끌었다고 해야할까.

화가와 붓이 하나되어 하얀 여백에 닿자마자, 봄빛은 폭풍처럼 질주하는 야생마로, 유려하게 펼쳐지는 하늘색 푸른 멜로디로, 목마름의 정상으로 올라 내려 꽂히는 우뢰로, 심연의 깊은 동굴에서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망울로, 웅혼한 바람으로 내달려 끝도 모를 절벽 위에서 떨어지는 청량한 폭포수로, 산안개 자욱한 산허리를 굽이도는 신비로운 구름으로, 어느 봄날 돌담 밑 한 송이 들꽃을 지켜주는 갸륵한 속삭임으로 온유함이 멋드러지게 펼쳐져 있다.


그것을 보았을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마음을 흔드는 예술이란 형식에 그치는 것이 아닌 그 세계의 생동감, 있는 그대로의 실제에 부합해 살아나고 살아 있는 예술로, 시와 음악이 함께한 공감각적인 그림, 사랑과 평화가 공감각적인 세상, 너와 내가 함께하는 공감각적 마음으로, 본질의 붓은 본성의 그리움을 멈춰 세우는 마법같은 순간이다. 

그 마법같은 순간이란 그리지 않고선 정말로 미치고 환장할 것 같은 화가가 마음 속 깊은 응어리까지 들어가 자신의 모든 것을 긁어내 깊이 울릴 때 나타나는 것으로, 절실과 절박한 그리움이 응결된 사람만이 이뤄낸 그 무언가로써, 하늘은 이런 이에게 천년만년 길이 남을 감동을 준다.

 

 

국전인 제39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전에 이어 올해엔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우수상(서울시의회 의장상)을 수상한 입신의 경지. 
완도읍에서 예헌갤러리를 운영 중인 예헌 김진자 화가다.
얼마 전 본지에서 소개됐던 대원 황영윤 선생과는 동문이라고 했다. 호남대 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했고 스승으로는 목하 정지원, 노전 묵창선, 임농 하철경 선생에게서 사사를 받았다고. 이 처럼 빛나는 순간의 이면에는 스승님의 훌륭한 가르침이 있었다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맞다. 청출어람의 순간, 어진 스승은 제자를 질투하지 않기에, 어떻게 해서든 자신을 뛰어넘길 바라고 바란다. 
스승을 이기는 것이 스승에 대한 최고의 보은으로 그 스승의 덕성을 다시 후학들에게 내리사랑함으로써, 비로소 그 보은을 완성시키기까지가 예인의 참 덕목일 터. 
현재 활발한 예술활동으로 지역사회 새로운 문화예술을 창달하고 있는 완묵회가 그녀의 후학들이다.  

 

 

가장 기쁠 때를 묻자, 김 화백은 자신의 문하생들이 심기일전 일도매진해 개인전을 열 때라고 했다. 문하생 중에는  여운 황여숙, 연재 박정심, 영광 유영자, 백연 김옥선, 죽헌 박학모 제자 5명이 머리(개인전시회)를 올렸다고.


김진자 화가는 "예술이란 내가 하고 싶은 말과 같다. 예술가의 말은 함부로 내뱉는 것이 아니라 침묵보다 나을 때 나오는 것. 그럴 때 예술은 예술가보다 오래살게 되는데, 그런 면에서 예술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예술이 가지는 자유와 평등, 구원과 사랑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곧 예술이다"고.


또 "그러기 위해서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한 나의 눈이 이르지 못한 새로운 세계에 대한 부끄러움과 행하지 못한 절망감, 그리해 볼 것을 바로 보려고 더 깊은 고뇌의 숲속으로 들어가, 그 밑바닥을 치면서 너와 나, 가슴과 가슴으로 흐르는 강물의 꼬리를 붙잡고 너와 나를 잇고 있는 뜨거운 몸짓을 느끼면서 영롱한 눈빛과 단단한 마음, 투명한 정신과 공존의 소망으로 더한 독립적 자유를 실현하여 당신의 아픔을 나와 같이 하는 일이다"고 했다.

 

 


옆에서 대화를 나누던 박학모 완묵회 회장은 "김진자 선생님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마음이 평온해지는데, 그 안으로 들어갈수록 그곳에는 각기 다른 운율과 리듬이 교직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며 "김진자 선생님이 작품을 대하는 모습을 볼 때면 사랑보다 더 깊은 그리움의 높은 하늘과 광활한 바다가 하나가 되는 별의 가슴으로 어디에 내놔도 아름답고 눈부시다"고.


이어 "화합과 함께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자존심을 모두 버릴 줄 아는 통크고 멋진 사람인데, 선생님의 내면의 닦음은 세찬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고 거친 폭풍 속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 강하고 담대한 사람이란 걸 느낀다"고 말했다.
빛으로 사유하는 사람. 


그의 붓은 표면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의 무수한 붓놀림에는 무수한 빛감들이 쉴새없이 번쩍인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도 아니다.
매 순간, 그 빛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삶이다.


그 흔적은 놀랍게도 소멸되고 상실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속되고 순환할 뿐. 소멸하는 것조차 그의 목덜미를 나꿔 채 그것을 형상이라는 선명한 화단(畵壇) 위에 머물게 하는 경이로운 사람!
소멸의 계기와 스러져 가는 재귀적 계기를 드러내며 환하게 불 밝히는 이 비밀스러운 힘을 무엇이라 해야 할까?


살아서 꿈틀꿈틀 대는 이 추동하는 에너지를 과연,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그 안에는 그림으로써, 씀으로써, 지움으로써, 자신을 교정하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본질적 항체가 돼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여 이를 우주의 질서로 지켜내는 궁극의 아름다움으로 표출되는데.
인간이든 사물이든, 삶이든, 세계든, 따로 또 같이 서로 어울리며 스스로를 영위하며, 빛의 소용돌이 속에 드러나는 한때의 광휘와 쇠잔은 일상의 크고 작은 원리 속에 널려 있다. 


그런 점에서 김진자 화가가 선사하는 예술이란 그래서 진리며, 창출된 그의 세계는 새로운 진리의 빛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누군과의 영혼과 맞닿아 세상을 풍요롭게 하려는 창조와 희생적인 헌신, 그리고 이 우주를 탄생시킨 쉼없는 생명력으로 순간순간 번쩍이는 생명의 섬광, 그것이다.

 

예헌 김진자 화가 <주요경력> 
개인전 5회/국전 특선 우수상 
한국서화대전 한일색지예술대전 심사위원
한국미술협회 이사
예헌갤러리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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