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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붉가시나무, 나라와 백성 어떻게 구했나 (2)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1.10.08 15:55
  • 수정 2023.11.0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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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불멸의 이순신에서 조선 수군이 왜군 함대를 명중시키면서 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진격하라! 한 치도 물러서지 말라!”, “발포하라!” 이순신의 명령에 조선 수군이 발사한 대장군전이 왜군 함선으로 날아들자 혼비백산 흩어지는 모습에서 통쾌함을 느꼈다. 그때 조선 수군들은 얼마나 긴장되고 아찔했을까. 

왜군 장계에 '조선군은 통나무를 뽑아 대포에 넣어 쏜다'든지, '조선군이 쏘는 화살은 통나무만 하다'는 내용을 보면  대장군전은 기선 제압용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여긴다. 대장군전은 조선시대 개발한 천자총통용 화살이자 포탄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자총통은 명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16세기 이전부터 고안됐다. 화살촉 모양의 철혹이 있고 세 개의 날개를 부착, 철재와 목재의 혼합으로 무게가 56근(33.6kg), 사정거리는 900보(1.4km) 병기도감인 화포식언해에 기록된 내용이다. 임진왜란 때는 소형화되어 지자총통에 사용하면서 장군전(將軍箭) 등 맞춤형을 생산하기도.

대장군전의 관통력은 천자총통 화포로도 충분한 거리를 날아 적함에 구멍을 뚫어 적군을 무력화하는, 그야말로 막강 해전을 목적으로 만들었다. 긴 사정거리와 파괴력은 소형선을 타고 접선 후 백병전 하는 왜군에게는 덜 하겠지만, 적군 대장선을 종잇장처럼 찢어 침몰시켜 심리적 압박을 주었던 것이다.

실제로 일본에는 대장군전 실물이 하나 남아있다. 안골포해전 당시 구키 요시타카가 전투 도중 그의 함선에 박힌 것을 챙겨 갔던 것이다. 구키 요시타카가 이끌던 함선은 모두 격침되어 패잔병은 육로로 도주했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왜군은 왜 이런 굴욕을 당했는지 보고하려고 본국으로 가져간 것을 구키 가문에선 “격침당한 함선에서 건져왔다”는 말은 차마 못 하고, 1593년 부산해전에서 노획했다고만 적어놨다.

그때 실물이 지난 2017년 국립진주박물관의 정유재란 7갑자(420년) 기념 전시회에 구키 가문의 협조를 받아 국내에서 전시했다. 그런데, 대장군전 몸통 중간에는 '가리포 상 김등 조'(加里浦 上 金等 造)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가리포는 전남 완도에 설치됐던 수군 첨절제사진(僉節制使鎭). 위 내용으로 볼때 대장군전은 가리포 사람 김씨 등 여럿이 만들어 진상한 것으로 추측한다. 

 

그것은 상왕산 붉가시나무로 만들었던 것인데,  실물을 토대로 해군사관학교에서 재현해 만든 대장군전이 400m 거리에서 화강암 틈새를 파고들어 80cm나 뚫었다고 한다. 이 정도 파괴력이면 관통탄이라 불러도 손색 없을 정도라고 한다. 

완도 상왕산 붉가시나무는 참숯으로도 이용했다. 청해진 장보고 상단은 품질 좋은 붉가시나무 숯인 백탄을 만들어 당과 무역했다. 완도수목원 2전망대에서 백운봉으로 50m 거리 등산로에 숯가마 터 원형이 아직 남아있다. 대대로 이어오던 것인데, 1970년대까지 지역주민들이 생계 수단으로 백탄을 생산해 판매한 흔적이라고 한다.

지난 2015년 전남도는 완도수목원 숯가마 터를 전국 최초로 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했다. 문화재로 보호받지 못해 방치된 자산을 관리해 후손에게 물려주려고 생태관광 자원화하려는 산림자산이 지금에야 주목받고 있다. 산림의 역사성과 보전 가치를 이제야 안 것이다.

정조실록 18년(1794년) 12월 25일 위유사 서영보의 별단에 완도에서는 격월로 숯 20석을 해남 우수영으로 공납한 기록이 있다. 상왕산 붉가시나무 백탄은 열효율이 높아 쇠를 달구어 무기를 만드는 곳에 쓰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상왕산 일대에 숯가마 터가 많았던 것은 다른 지역의 낙엽성 참나무와 달리 상록활엽수는 조직이 치밀하고 단단해 양질의 숯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숯을 굽던 가마 입구와 굴뚝이 원형으로 그대로 보존된 상태이고, 선조들의 생산 활동을 파악하는 보존 가치가 높은 자산이다. 

 

북극의 눈물, 최후의 툰드라 등 환경 다큐멘터리 방송을 본 적 있다. 극 지대 만년설이 지금도 쉬지 않고 녹아내리는 모양새다. 지구 온난화는 진행 중이다. 지난 20년간 평균 기온이 약 0.3~0.4°C가 올라갔다. 지구는 약간의 기온 변화에도 변화가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해결 방법으로는 탄소배출을 줄이는 것 외에 식물의 역할에 의존한다. 산림자원인 숲을 보존해야 할 가장 큰 이유다. 이산화탄소를 나무가 소화하지 않았다면 지구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기후변화 대응에 우수한 수종이 참나무 종류, 그중에서 사계절 내내 광합성 하는 상록수종으로 붉가시나무가 가장 으뜸이라고 한다. 완도수목원 붉가시나무숲은 1,220㏊ 정도로 국내 최대, 연간 중형자동차 약 3,600대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여 저장할 수 있다. 완도의 숲과 바다는 끊임없이 산소를 뿜어내는 그야말로 천혜의 자원인 셈이다.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읍 기각리는 붉가시나무 자생 북한지다. 면적 33㎡. 함평읍 기각리는 우리나라 난대성 식물 중 붉가시나무의 자생 북한계 지대로 알려졌다. 지난 1962년 12월 3일 천연기념물 제110호 지정, 200년 수령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북쪽에서 자생하는 이유로 지정했다. 그런데 전북이 북방한계지로 학계에 보고된 붉가시나무가 근래 인천 앞바다 무인도에서도 발견됐다.

 지난 2001년 인천시 옹진군에서 1㎞ 떨어진 무인도 납도에서 붉가시나무 2그루가 발견됐다. 납도에 자생하는 붉가시나무는 수령이 300여 년으로 추정, 위도상 최북단에서 자라고 있다. 붉가시나무는 나뭇결이 곱고 색깔이 불그레해 가구나 내장용 목재로 가치가 있는 장래 유망 경제수종이라고 한다.

그런가하면 전남산림자원연구소가 지난 2009년 8월 기능성 웰빙식품을 발표했다. 칼슘과 철분이 풍부한 붉가시나무 열매를 이용해 묵 제조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전남산림자원연구소는 난대지역의 대표 수종인 붉가시나무 열매를 이용해 '기능성 묵'을 개발해 특허 등록을 하는 등 제조 기술을 정립했다.

도토리묵의 재료인 도토리는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등 낙엽성 참나무류의 열매를 주로 이용했다. 그러나 연구소는 완도수목원의 난대지역에 분포하는 붉가시나무 열매를 이용해 “완도주민들이 전통 방식으로 묵을 만들어 먹었다”는 말을 듣고 묵 제조법을 정립하게 됐다고. 성분 분석 결과 인체에 유익한 성분이 풍부한 것으로 나타나 천연식품이나 다이어트 건강식의 개발 가능성을 입증했다.

얼마나 가시가 많았으면 가시나무일까? 그런데, 상왕산 붉가시나무엔 가시가 없다. 사용할 일이 없어 퇴화해 버린 것일까? 완도 호랑가시나무에 있는 가시가 붉가시나무엔 하나도 없다. 붉가시나무는 참나무 종류에 속한 나무란다. 그래서인지 참나무처럼 도토리 열매를 알알이 달고 있다. 

간밤 비바람에 우수수 붉가시나무 열매가 떨어져 바닥에 가득하다. 가지도 나뒹군다. 떨어진 가지마다 도토리 열매가 가득하다. 잎사귀도 푸릇푸릇. 상왕산 붉가시나무는 참나무이면서도 가시나무다. '배고픔을 가시게 했다’고 붙여진 이름이란다. 관음사 터 오르는 길에서 오래된 붉가시나무 군락을 만났다. 빽빽한 상록수림을 지나고 나자 요새처럼 눈앞에 나타난 관음사 터에는 우람한 바위가 신령스럽다. 샘물도 맑다. 

 

옛터 풀 섶에 살며시 드러난 맷돌이 무척 인상적이다. 붉가시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를 모아다가 저기 보이는 맷돌을 쉬지 않고 돌려서 묵을 만들었을까? 그래서 백성들의 ‘배고픔을 가시게’ 했던 것일까? 관음사 터 바윗돌에 단단히 박혀서 고목이 된 붉가시나무에는 지나간 세월이 걸려있다.

 

정지승/다큐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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