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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으로 주고 받는 말, 한 폭의 그림에 전생애를 담아

사제동행으로 아름다운 김진자 화백과 완묵회 박학모 회장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21.10.1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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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선현이 이르기를, 비인부전 부재승덕(非人不傳 不才承德)이라. 사람됨에 문제가 있는 자에게 벼슬이나 재능을 전수하지 말 것이며, 그 재주나 지식이 덕(德, 정신)을 앞서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현역시절 조훈현 국수가 제자 이창호를 키워낸 후, 국가 대항전인 한중일 농심 신라면 바둑대회에 사제가 함께 출전하면서, 제자가 힘껏 싸우다 지고나면 마지막에 스승이 나서 이를 되갚아주고, 스승이 나이가 들어 패전을 하게 됐을 때 어느 새 성장한 제자가 마지막 보루가 되어 멋지게 응수하면서 대한민국의 승리를 이끌었던 모습이 참으로 뿌듯하게 느껴졌는데, 마치 그들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목격전수(目擊傳授). 눈빛으로 주고받는 말, 완묵회 박학모 회장과 박 회장이 스승으로 모시는 예헌갤러리의 김진자 화가.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 중, 사제동행처럼 아름다운 모습이 또 있던가! 굄(사랑)과 보은을 함축시켜 놓은 이 관계야말로 가장 정스러우면서도 도타운 정경이 아닐까.   
지난 주 본지에 김진자 화가의 이야기가 나갔을 때, 인용된 이름(박경모)이 잘못 돼 기분이 상하지 않았냐는 물음에, 그는 “이름의 가운데 자가 배울 학(學)이네요. 사람에겐 나 외에 모든 것이 스승이요, 경험에서 얻는 고뇌와 상처야말로 최고의 스승이다" 

 

그러며 말하길, 그 지면은 스승을 위한 것이고 제자가 스승을 위해 말할 수 있는 기회였기에 영광스러웠는데 완묵회 회장이란 이야기가 나갔으니 서운한 점은 전혀 없었다고. 나약하지 않으면서 겸손하기 그지 없는 음성이 나 외에 모든 것이 스승이 되는 사람으로써 대인의 풍모가 전해지는 건 그것 같았다. 
나이 어린 스승, 그러나 도를 구하는데 어디 나이가 별 것이던가.


박 회장의 지인 중에는 전통음악 예인이 있었는데, 35사단 군악대를 제대할만큼 트럼본의 명인으로 알려진 그는 지인에게 “트럼본을 한 번 불어봐라!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면 무언가를 받아 들이지 않으려 한다.” 며“이미 당신은 이 분야의 대가인데, 당신이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면 뭇사람들은 당신을 크게 경탄할 것이다”고 했단다.


박 회장의 조언에 지인은 트럼본을 배우고 있는데, 만인 앞에서 트럼본을 연주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듯 했다. 현재 박 회장의 그림 전시회는 읍내, 옥 카페에서 열리고 있는 중이며 주제가‘풍경속으로 초대’라고.
주제를 선정하는 감각이 돋보였다고 여쭈니, 기존의 틀을 벗어나면 어떨까하는 마음에서 그리 정했다고.


그러며 “세상의 경이로운 풍경은 자신을 알아봐 주는 정신을 조용히 숨죽이고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풍경이 풍경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조건은 그것을 알아주는 정신을 만나는 것이다. 그 의미의 심층부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사물이 사물성을 풀어 헤쳐서 정신까지 보여주면서 풍경으로서의 진정한 전모를 드러내 보이는 것을 화가는 가장 깊은 심연에서 이를 낚아채는 것이다"고. 


"그러기에 풍경이란 자신을 알아보는 응시자의 정신을 만났을 때 진정한 의미가 된다"고 전했다.
"결국 그림이든 음악이든 문학이든 그 안에는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담겨 있는데, 김진자 선생님으로부터 한 폭의 그림에 전생애를 담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고.


예헌 선생에게 박 회장의 장점을 물었다. 
김진자 화가는 “박학모 회장과 교유한 지는 7년째인데, 자기 관리가 워낙 뛰어나시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운동으로 시작하는 하루. 한 점 흐트러지 않는 모습이 존경스럽다"고 했다. 이어 "박 회장님의 장점은 자신이 말하고 마음 먹은 것은 반드시 행동으로 이어가시는 분인데, 박 회장님처럼 말하고 생각한 것을 구체적인 생활로 끌고 나가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고. 


또 "사람들은 포용을 이야기하면서 포용의 혜택을 입으려고만 하지 자신을 양보해 포용의 주도자가 되려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 예술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사람 답게 살게 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예술은 무의미한데, 박 회장님의 모습을 보면 진실로 포용하는 삶이 아름답다. 예술의 최종 목적, 그건 누군가를 구원하는 일로 그 길을 잘 가시는 것 같다"고.


젊은 시절 원양어선 선장을 하다가 완도수산고, 개나리호 선장을 16년간 하면서 학생들의 실습 교사를 맡았고, 중앙시장에서 자영업도 했다는 박학모 회장은 "삶의 철학은 나부터 철저하자. 무언가를 들었다면 꼭 확인하고 무언가를 시켰을 때도 재차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고. 한 번 약속하면 손해봐도 그걸 지키려고 노력하는데, 그의 성품은 젊은시절 배와 선원을 지켜야했던 선장의 책임감에서 비롯된듯 했다. 또 어떻게 트럼본의 명인이 됐는지도 느껴지는 대목. 신의 목소리로 알려진 트럼본은 절정의 순간을 기다려야 하는 악기. 성스러운 트럼본 소리가 밤의 신성한 고요를 깨뜨리는 것이 이웃의 마음에 든다면, 그런 불협화음 소리에 그를 기쁘게 하는 불행한 본능을 동정하는 것이다. 그의 처절한 음악과 특권을 참는 것이 트럼본의 의무다는 말이, 그와 딱 들어 맞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자, 그는 작은 소망인데 완도항이 바라다보이는 해조류박람회 2층 공간에 완도 문화예술을 위한 미술과 서예, 시와 사진 등을 전시할 수 있는 작은 전시장이 마련됐으면 한다며 눈동자를 반짝거렸다.

사랑이란 어떤 완성된 사람을 찾는 게 아니다.
나 스스로 만들어 낸 나만의 상(象)이 약속을 지키지 않자, 이내 실망해 버리는 그 어떤 상(象)이 아니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이를 내 안에서 형성하고, 너와 내가 하나가 되어  발전시키며, 떼어 냈을 때 비로소 나와 내가 존재했던 이상이 되는 것, 그 사람과는 전혀 다른 것이 창조되는 생산적인 태도이다.

 

이것이 바로 본인이 이기(利己)에 있는지 이타(利他)에 있는지를 결정한다. 이 태도가 없으면 사랑의 결론이란 소멸이다.  그의 그림에선 이타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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