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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햇살 맞으며 흙밭에서 뒹구는 잔잔한 떨림이외다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1.10.15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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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에서 불현듯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시월 어느 날 마른 숲에서 다소곳이 피어난 하얀 그리움은 어느 산길이 되었나 보다. 
사람의 입에서 고요한 새소리가 되고, 맑은 눈망울은 그림이 되고 싶은 계절은 내 마음의 풍경을 만든다. 


가을의 뜨락에서 점점 맑아가는 홍시를 보고 있으면 그 마음이 한곳 에서 맑은 하늘을 내려온다. 가을 한가운데에서 보이는 것마다 음악이 되고 시의 언어가 된다. 계절은 우리에겐 늘 깨어 있으라 한다. 무기력하고 진부한 삶의 패턴에서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라고 지시한다. 가을의 움직임은 가장 낮게 그리고 겸허하게 그러면 내 속 뜰을 가만히 들어다 볼 수 있다. 


가을산은 고요하다. 그러한 가운데 한 두 송이 피어난 산언덕에선 조용한 미소가 나를 반긴다. 구절초다. 남도에서 산국화라 부른다. 산에 국화꽃이 피었다.  스스로 피어 있음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아주 작은 산나물 꽃도 그 곁에 있다. 


소소한 옷차림에 바람에 흔들림은 누가 불러주지 않아도 음악이 된다. 가을 사랑의 꽃이 바로 산국화. 한사코 그에 곁에 머물고 싶어도 흰 구름은 저 산 넘어 흐른다. 구절초 피는 날은 중양절이다. 음력 9월 9일은 중양절이다. 예부터 이날을 중양절(重陽節) 또는 중구일(重九日)이라 했다. 중양이란 음양사상에 따라 양수(홀수)가 겹쳤다는 뜻이며 중구란 숫자 '9'가 겹쳤다는 뜻이다. 


설날, 삼짇날, 단오, 칠석과 함께 명절로 지내며 복을 기른다. 음력 중구일은 어제다. 이때 산국화 꽃을 따서 말려야 약효가 좋다고 한다. 약효는 부인병과 피를 맑게 하고 우리 몸에 모든 분야에 좋다고 한다. 


산국화 화전에 막걸리 한 잔 하고 싶어진다. 사랑은 계절 따라 떠난다고 하더라도 그리움은 영원히 내 곁에 머물러 있는 것. 산국화 피는 언덕에서지는 해를 바라보며 그리운 님 떠올라도 전혀 외로울 것 없다. 산에서 피는 풍경이다. 마른 풀밭 사이에 푸른 용담 꽃은 아쉬운 가을 하늘을 보내고 있지만 산국화 피는 산 넘어는 향기로운 향기가 아름답게 피어 난다. 


마른 언덕에서, 바위틈에서, 그곳에 네가 있어 그리운 언덕이 되었고, 언제나 그 자리에서 천년이 넘도록 기다림으로 피었다. 산길에서 이따금 피어있는 산국화는 그래서 외롭고 쓸쓸하다. 
골짜기에서 들려오는 가을 새소리는 외롭다. 가을 풍경, 그 쓸쓸함은 오히려 내 마음을 깨우고 그윽한 산국화 향기는 내 삶의 곁에서 생생하다. 


바로 내 앞에서 가장 실재적이고 구체적이다. 먼 과거도 아니고 먼 미래도 아니다. 한순간의 그리움은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흔들리며 노래하는 계절은 엊그제, 벌써 가을 햇살은 깊어만 가고 그 몸짓은 흙밭에서 잔잔한 떨림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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