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완도‘황장목’신석기부터 제주와 교역

[기획 연재] 한반도 해양문화의 중심 완도학(莞島學) 시즌 2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1.10.15 14:23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천년전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완도에 모여 살며 제주도와 연결하여 교역을 하며, 소라와 조개, 전복 등을 채취하고 낚시로 어류를 잡아 섭취하고 살았음을 패총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고금도와 완도 곳곳에 산재한 고인돌을 통해 청동기, 철기를 거치면서 꾸준하게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음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이었기에 사람들이 완도에 살아왔을 것이다. 사람이 살기에 부적합하거나 혹은 살 수 없는 환경이었다면 그러한 패총이나 고인돌 유적들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패총이나 고인돌 유적들이 말해주는 것은 사람들이 살만한 자연환경과 사회환경이 조성되어 사람이 꾸준하게 거주하고 생활하고 나아가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여 전승한 역사를 가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기록으로 나타난 완도 사람들의 의식주 생활을 알 수 있는 기록은 극히 미약하다. 특히나 역사의 기록이 중앙에 치우치고 나아가 지배층의 삶을 기록하는데 치중했기에 섬에 사는 미천한 사람들의 기록은 거의 찾기가 힘들다. 섬이란 삼국시대부터 버려진 땅이었다. 중요하게 취급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죄인들의 유배지로서 이용되는 아주 험악한 원악지(遠惡地)로서 기피지역이었고, 섬이 가지는 자원과 가치는 무시되고 있었던 문화였다.


그러한 섬에 대한 인식과 가치에 일대 변환을 꾀한 최초의 인물이 장보고이다. 섬이 가지는 무한한 가치를 최대한 이용하여 청해진제국을 섬에 건설한 것이다. 섬이 가진 그전까지의 역사상 의미를 완전히 뒤바꾼 최초의 사건이 바로 완도였다.


섬이 역사의 중심으로 등장한 것이다. 장보고 청해진제국이다. 완도의 자연환경과 사회환경이 그렇게 만든 것이지 장보고가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완도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의 삶을 장보고가 이용하여 당시 세계에서 최초의 바다를 이용한 한중일 삼각무역과 해상무역을 통한 상업제국을 형성했다는 점이다. 그 중심에는 바로 완도의 물산이 아닌 완도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828년 이전부터 완도는 그러한 무역항으로서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고 그러한 완도사람들의 역량이 장보고의 청해진제국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가설에 대해 증거가 있느냐고 말할 것이다. 
바로 장보고가 만들어서 타고 다녔던 교관선(交關船)이 말해준다. 대양을 항해할 수 있는 배가 없었다면 장보고는 없었을 것이다. 장보고 청해진제국의 가장 기본이자 근간을 이루는 것이 바로 배(船)이다. 배가 핵심이다. 배를 건조하고 만들 수 있는 역량이 있었기에 장보고는 제국을 건설한 것이다. 배는 당시 세계에서 최고의 가치를 지닌 하드웨어였다. 대양을 항해할 수 있는 선박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과 재료를 완도는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장보고가 알고 이용한 것이다.

6천년 신석기 때부터 배를 타고 제주도와 여서도, 그리고 완도를 오갔던 완도사람들의 배를 만드는 기술과 완도에 풍부한 배를 만드는 황장목이 무진장 많았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결국 장보고를 만든 것은 바로 완도사람들의 배를 만드는 기술이 전승되었기 가능했고, 당시 세계에서는 혁신적인 교관선이라는 대양항해가 가능한 유선형 배를 만들어 성공적인 항로개척을 했기에 장보고는 커다란 부를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점을 간과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다. 완도라는 섬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가진 기술, 즉 배를 만들어서 신석기시대부터 제주도와 교역하면서 살았던 사람들이 대를 이어 오면서 문화로서 이어온 배를 만드는 기술이 장보고를 만들어낸 것이다.
당시 세계에서 혁신적인 선박의 제조기술로 배를 만들어 당시 세계를 지배했다는 것이다. 배를 만들었던 완도사람들의 기술이 그 바탕이었음을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기술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조선수군의 전선이었던 판옥선과 거북선의 기술도 완도의 기술이 그대로 전수되었다고 볼 수 있다. 1555년 왜구들이 완도를 침공했을 때 왜구들이 몰고온 커다란 규모의 선박을 보고 완도의 기술자들이 황장목을 이용하고 만든 배가 바로 판옥선이다. 이 판옥선이 조선수군의 전선이 되고 황장목으로 만든 강하고 튼튼한 배가 이 나라를 왜구로부터 지킨 것이다. 임진왜란도 이순신의 행적으로 따져볼 때, 완도에서 시작하여 완도에서 끝냈음을 알 수 있다. 완도가 중심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바로 완도사람들이었다. 
장보고도 또한 이순신도 완도사람들이 가진 배를 만드는 기술로 인하여 역사적인 업적을 이루어낸 것이다. 특히나 이순신의 전선과 공격무기의 다수가 완도에서 만들어졌다. 가리포상 대장군전과 가리포상 이혈총통이 말해주고 있다. 1460년 세조6년 조선왕조실록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조운선 1백 척을 8월 초1일부터 시작하여 만들겠으니, 여러 고을로 하여금 선장 1백명, 목공 2백 명을 뽑아서 징발하게 하여 변산과 완도에 보내도록 하라.> 
 <계속> 


완도신문 해양역사문화 포럼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