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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산도 가을편지,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정지승의 완도, 어디까지 가봤니?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1.10.15 14:39
  • 수정 2023.07.3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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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가을편지' 한 소절을 되뇌며 저절로 흥이 돋는 밤. 숙소 앞 갈대밭에는 소슬바람 분다. 서걱서걱 자연의 소리, 풀벌레 소리, 잔잔한 파도를 배경 삼아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가을밤이 깊어만 간다.


이 계절 그리운 누군가에게 소식 하나 띄워야겠다. 꾹꾹 펜을 눌러 기억 저편에 묻어둔 그 순간을 끄집어낸다. 그대가 누구든 받아줄 것이다. 황톳길, 갈대밭, 소슬바람, 풀벌레 소리, 모두가 추억 돋는 그리움, 기나 긴 사연은 끝이없다.

뜬눈으로 밤을 보내고 비몽사몽 날이 밝았다. 방파제 따라 전해지는 고요, 여명의 바다에는 해변 산중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천연의 캔버스 위에 구름모자 눌러 쓴 천관산이 저 건너에서 인사를 건넨다. 자연 그대로 펜션에 오면 누구랄 것도 없다. 세상 온갖 것 훌훌 털어버리고 자연과 동화할 뿐, 걱정 근심 따위는 거추장스런 일상의 잔해들이다. 


10여 년 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도 그랬다. 복잡한 일상에 시달릴 때면 몸이 먼저 찾고 싶어 했던 곳. 어두리 선창 약산면의 끄트머리에 있어서 오지 여행을 즐기는 사람에게도 맞춤형 공간. 갯마을의 묘미를 알기에는 한층 격이 있는 곳, 자연 그대로에서 느낄 수 있다. 몇날 며칠 하릴없이 어슬렁 거리며 뜨락을 거닐어도 좋다. 

정오에 이르자, 샛노란 물감을 뒤집어 쓴 학교 건물이 퍽 인상적으로 눈에 박힌다. 파란 하늘 아래서 휘날리는 태극기, 가을 하늘이 높다. 맨드라미 꽃잎 고고한 자태며 갈대숲에 이는 사그락사그락 바람소리. 눈꺼풀이 무거운 권태로운 오후. 빨강 우체통 너머로 날아든, 한낮 땡볕을 피해서 철모른 나비가 사뿐! 꽃그늘에 앉는다. 


일 보러 주인장이 밖에 나가고 홀로 남은 공간. 자연의 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벤치에 앉아 있으니 시골스러움이 낯설지 않다.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추억을 불러내 사색에 잠긴다. 얼마만의 여유로움인가!


자연그대로에서는 주인장 역할이 때에 따라 다르다. 어느 날은 교장 선생님이었다가 때론 선장님이 되는가 하면, 어느 밤엔 태공이 되어 한없이 세월을 낚는다. 

 

꽥꽥이 오리둠벙, 수학여행, 봄소풍, 가을운동회, 섬마을 선생님, 방마다 제각각 정겨운 이름이 달렸다. 높이 솟은 항아리 굴뚝에 스멀스멀 피어나는 연기를 떠올려보면 옛 생각이 간절하다. 저녁을 먹고 나자 주인장은 바늘 없는 낚시로 붕장어를 유혹하는 땟방낚시 철이 왔다며 TV 방송 촬영 녹화본을 켠다.

 

# SBS 출발 모닝와이드에서 땟방낚시를 촬영했다. 야행성인 붕장어 특성상 밝은 조명 때문에 땟방을 물고 오다 번번이 입을 벌렸다. 낚싯바늘이 없는 낚시질이라 좀 힘들었지만, 하늘도 도와주셔서 호수 같은 밤바다를 배경으로 촬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시래기 된장국과 구이를 해서 지인과 맛나게 먹었다. 자연이 베풀어 주는 특권을 마다치 않고 즐길 수 있어 행복하다. 물때가 맞으면 손이 간질거린다. 고향 금당도로 쏨뱅이 낚시를 갔다. 일타쌍피는 아무나 하나요? 복어 등가죽이 낚싯바늘에 꿰어 잡혀 온 복어는 또 아무나 낚나요? 낚시는 정신건강에 참 좋다. 회도 맛있고 구이로도 최고다. 쌀뜨물 넣고 끓인 맑은 간국은 더욱더 최고다. 이래저래 행복한 쏨뱅이 낚시! 하도 잘한다고 다른 분들이 붙여준 이름, 그 이름은 바로 송 태공! 

 

SNS에 올린 주인장 글을 읽으니 송 태공의 낚시 솜씨가 무척 궁금하다. 아침저녁으로 밥상에 오른 생선구이가 송 태공의 낚시 실력 덕분이었다니. 자연 그대로 펜션을 클릭하자 부부의 소소한 일상이 인터넷에서 생생히 전해진다. 

부부의 삶이 여유롭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지만 이것이 현실과 맞나?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 어느 누가 인생을 이율배반적이라고 했던가. 유유자적 삶이 생각할수록 부러울 따름이다. 

 

부부에게도 사연은 있다. 14년 전 광주에서 유통사업에 매진하다가 바깥양반이 바쁜 생활전선에서 병을 얻어 고향에 조그마한 폐교 하나를 매입했다. 그곳에서 자연의 삶을 체험하면서 주인장은 쉬지 않고 폐교를 꾸몄다. 지난한 시간, 어느곳 하나 주인장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서서히 그의 몸은 치유됐다. 자연의 기적을 몸소 체험한 것.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부부에게는 자연이 가르쳐 준 생활방식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 하던 일 멈추고 잠시 꽃과 함께 놀이에 빠진다. 꽃밭에서 노는 게 내 삶이고, 내 삶이 꽃놀이다

 

주인장의 꽃놀이가 마냥 부러워 밤을 잊고 수다 삼매경. 옛이야기를 줄줄이 소환한다. 10남매 대가족, 금당도 태생이라서 천혜의 자원 금당도 자랑이 쉴새 없다. 밤새워 들어도 지칠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금당팔경을 넘어 금당33경에 빗댄 언어의 유희에 금당도 유람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주인장이 추천하는 낚싯배 섬 유람은 자연 그대로 펜션을 찾는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을 추억을 선사한다고. 


선선한 바람 불고 온 산에 단풍 들면 주인장 낚싯배 얻어 타고 금당팔경 유람이나 떠나봐야지.


정지승 다큐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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